그대가 나를 잊는다면
파블로 네루다
그대가 한 가지만 알았으면 하오.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을 거요.
내가 수정처럼 빛나는 달,
창가에 걸린 더딘 가을을 볼 때,
화롯가의 마른 재나
주름진 장작을 만질 때,
그 모든 것들이
그대에게 나를 데려다준다는 것을.
존재하는 모든 것들,
향기와 빛과 금속들마저도
나를 기다리는 그대의 작은 섬들로 항해하는
작은 배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대가 나를 조금씩 사랑하길 멈춘다면
나도 그대를 조금씩 잊어갈 거요.
그대가 갑자기 나를 잊는다면
나를 찾지 마시오.
나는 이미 그대를 잊었을 테니까.
만일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내 삶을 지나는 거센 바람이 못 미더워
내가 뿌리내린 그 마음의 땅에서
나를 떠나려 결심한다면,
기억하시오.
그날, 그 시간에
나는 팔을 치켜들고
내 뿌리는 또 다른 땅을 찾아 떠날 것이오.
하지만
매일, 매 시간
그대가 마음속 깊은 애정으로
나를 위해 운명 지어진 존재임을 느낀다면,
매일처럼 한 송이 꽃이
그대의 입술 위로 올라 나를 찾는다면,
아 내 사랑, 나의 사랑
내 안의 모든 불꽃은 끊임없이 타올라
내 안의 모든 것은 꺼지지도 잊히지도 않고,
나의 사랑은 언제나 그대와 함께 할 것이오.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나의 사랑은
결코 떠나지 않고 그대의 품에 안길 것이요.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출신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의 시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시를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마틸드 우루티아(Matilde Urrutia)라는 여인에게 보내는 사랑의 시라고 말합니다. 한편 다른 이들은 1948년 칠레의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13개월의 망명 생활 동안 고국 칠레를 그리워하며 쓴 것이라 얘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 속의 ‘그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든 조국이든 시인이 표현코자 하는 것은 사랑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었으니까요. 모든 마음이 사랑하는 이를 향하고 있음에도 시인은 ‘그대‘가 나를 잊으면 자신도 잊으리라 다짐합니다. 자신의 거친 삶이 못 미더워 떠난다면 자신 역시 사랑의 뿌리를 내린 그 땅을 버리리라 소리칩니다. 하지만 시의 마지막 연은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사랑에의 갈구를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경고인지 간청인지 모를 감정의 격동이 느껴집니다. 하긴 사랑이 그런 것이겠죠. 가끔은 분노하고 때로는 애원하는 두 가지 마음이 늘 공존하는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여인이든, 그리운 조국이든 시인의 마음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