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 김수영
절망
김수영(1921~1968)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Despair
Kim, Soo-young
Scenery never reflects on itself,
Neither does mold,
Neither does summer,
Neither does speed,
Neither do cowardice and shame.
Likewise, the wind comes from elsewhere,
Salvation comes at an unexpected moment
And despair never reflects on itself to the end.
From his collection of poems ‘Love Variation’(1990)
세상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할 뿐,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나무는 나무고, 강은 강이고 인간은 인간일 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코 자신을 바르게 바라볼 수 없다. 사랑도, 미움도, 그리움도, 아픔도.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듯이, 우리는 영혼의 구원이 언제 다다를지를 예측하지 못한다. 절망 또한 그렇다. 절망이 언제 제 스스로를 반성한 적 있는가. 다른 모든 것처럼 절망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 채 끝없이 계속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