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근화 Aug 23. 2020

예술가가 이별을 말하는 방식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고

 

 거실 tv에 케이블 영화 채널이 있어서 얻는 이점들은 생각보다 많다. 우선 좋은 영화들을 공짜로 볼 수 있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차림과 자세로 간식을 씹으며 영화를 볼 수 있다. 물론 간식과 소파가 동원되는 이 시간이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에 남기 위해서는 시청하는 영화가 너무 망작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제한사항이 있다. 하지만 케이블 채널에서 틀어주는 영화들은 방송사의 내부 회의를 거쳐서 선별된 작품들이기에 폭탄을 밟은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봐서는 그랬다. 폭탄을 피할 뿐 만 아니라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처음 접한 좋은 영화들도 꽤 많은데 [블레이드 러너 : 2049]와 [아가씨] 등의 명작을 케이블 채널 덕분에 알았다. 그리고 최근에 나에게는 그 리스트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추가할 기회가 생겼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과거 서부극의 제왕으로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구가한 이스트우드가 직접 각본에 참여하고 주연까지 맡은 영화다. 그 배경은 18세기 미국이며 전형적인 서부극의 공간 배경을 뒤에 두고 전개된다. 그러한 배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빛나는 실적을 미리 듣는다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차오르는 기대감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 후 2시간 반의 러닝타임이 지난 뒤 내가 느낀 감상은 이랬다. ‘시대가 언제건 할리우드는 할리우드였구나.’     


 이 문장에서 쓰인 할리우드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선정적인 화면만을 추구하는 영화 공장으로서의 할리우드가 아니라, 세계 영화 산업의 꼭대기에 군림하며 매일 참신하고 매력적인 각본을 쏟아내는 창작의 장이라는 의미에서 쓰인 긍정적인 수사. [용서받지 못한 자]의 각본은 그런 의미의 할리우드에 딱 어울리는 수준의 각본이었다. 수상 실적이 그에 대한 보증 수표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언제나 나와 같은 감상을 느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인터넷에 영화를 검색해 보는데, 인터넷에 이 영화의 이름을 검색해 보면 가장 많이 뜨는 결과는 하정우가 출연한 한국영화의 포스터이다. 이 영화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글자도 반드시 검색어에 포함이 되어야 한다. 몇 있지도 않은 리뷰 글들을 찾아 읽어 보면 다들 비슷한 레퍼토리로 이 작품의 장점을 평가하고 있는데, 본 리뷰에서는 내용 중복을 피하고자 가능한 필자 혼자만의 생각을 동원해서 영화를 평가해 보겠다.  

   

 다른 리뷰들에서 내린 대동소이한 평론들 가운데 눈을 끈 부분은 과거 서부극의 황제로 군림한 이스트우드가 직접 만들어낸 ‘마지막 서부극’이라는 표현이었다. 이미 운명이 결정 나 버린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연명치료 대신 품격 있는 마지막 순간을 맞을 기회를 주는 선택. 어찌 보면 그의 대표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는 그의 선택은 마지막 서부극으로 역사에 남은 이 작품,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미국의 관객들과 함께한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가장 이상적인 마무리를 맞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논지인데, 글쎄.     

 이런 종류의 감정이입은 결국 이스트우드의 전 작품들을 오래 봐온 관객이 아니라면 공감할 수가 없는 경험이다, 아쉽게도 나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그랬기에 이스트우드로 대표되는 서부극의 얼굴들을 보며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에서 여타의 리뷰들과 차별점을 둘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영화에는 장르적 특성이 아니고서라도 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많았던 덕분이었다.


 영화의 서사는 시종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억지스러운 전개도 없고, 논리의 비약도 없다. 더러운 과거를 뒤로 하고 소시민으로 돌아온 머니가 급전이 필요해졌고,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스코필드가 찾아와 현상금이 걸린 의뢰를 하나 알린다. 그런데 이 남자, 아마추어다. 총잡이라기에는 딱 봐도 티가 날 정도로 어설프다. 키도 너무 작거니와 목소리에서도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그 판에 발을 담그기는 싫어도 애들이 눈에 밟힌다. 어쩔 수 없이 의뢰를 받은 머니는 옛 동료를 찾아간다.     


 이렇게 팀은 결성되었고, 그들은 타깃을 제거하기 위해 평원을 가로지른다. 의리와 이해관계가 적당히 맞물려 결성된 이 팀의 구성은, 이후의 서사 전반에서 이야기가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팀의 구성원이 두 명이 아닌 세 명이기에 세 갈래로 제시되는 1 대 1의 관계가 순차적으로 전면에 등장하며 지루함을 날린다. 노련한 킬러 두 사람과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대립각을 세우며 주고받는 대화들 속에서는 피로 얼룩진 지난날을 반성하는 머니의 회한이 느껴진다.


 머니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든든한 조력자로 나온 네드의 쓰임새도 훌륭하다. 보안관 빌의 습격에 의해 머니는 동료들과 떨어지게 되고, 리더를 잃고 방황하는 애송이를 데리고 주체적인 대응에 나서는 네드는 빌과 그들 사이의 전쟁이 더욱 격화되리라는 기대를 관객에게 심어준다. 여기까지. 어떤가? 시나리오의 구성이 무척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자세히 묘사하면 너무 길어지기에 적당히 생략해버렸지만, 주인공의 대립자로 등장하는 빌도 상당한 매력을 갖춘 인물이다.     


 설령 그 방법은 폭압적이고 그릇될지언정 ‘집’으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이 있고 그 철학이 세워진 계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선뜻 돌을 던지기 어려울 것이다. 신념을 가진 반동자 캐릭터가 각광받기 시작한 시기가 2000년대 후반인 걸로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보다 십 수년 전에 나온 이 영화가 이토록 매력적인 인물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서부극의 역사적 맥락을 떼 내고 보더라도 그 자체로 좋은 영화이고 재밌는 스토리이다. 감정이 이입되는 인물들과 그들이 선보이는 설득력 있는 구성은 당시 기준으로도 엉성한 티가 나는 총격 액션에서 느낀 아쉬움을 넉넉히 보상해준다. 90년대 중반에도 이미 이 정도 수준의 완성도를 선보일 만큼, 할리우드의 영화는 독보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 영화는 격력 한 파도보다는 잔잔한 계곡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훌륭한 구성이고 스릴 있는 전개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리듬은 결코 빠르다고는 볼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이 오고 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그처럼 느린 리듬을 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시대의 맥락을 끌고 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른 리뷰들에서 여러 번 지적한 바와 같이, [용서받지 못한 자]는 일종의 작별인사로 쓰이는 영화다.     


 그 인사는 서부극의 대부가 서부극의 팬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장르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고, 이제는 달릴 힘이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보내주십시오.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 주십시오.’ 이토록 기품 있는 인사가 오고 가는 현장에서, 눈치 없이 헤비 록 음악을 틀고 소리를 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별하는 연인들은 말보다도 눈빛과 몸짓, 나아가 분위기로 더 많은 교감을 나누곤 한다. 오랜 기간을 서로 사랑한 연인들이 마지막 순간을 보내며 느끼는 애틋함이 이 영화에는 담겨 있다.     


 그러니 2020년의 기준으로 봤을 때 너무 전개가 느리다고 아쉬워하지는 말자. 25년 전에 나온 영화가 현대의 리듬에 부합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다. 영화는 시대를 말하고 있다. 서부극이 너무 물려서 장르의 문을 닫겠다고 선언한 그 시대마저도 20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 느린 리듬에 몸을 맡기고 과거의 과거에 존중을 보내는 과거의 영화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논픽션의 탈을 쓴 상상력의 산물, 화폐전쟁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