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아니에요 수제비예요
전에 사둔 다시팩이 깊고 진한 맛이 나서 다음에는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느껴지는 주말, 반죽을 만들어서 수제비를 끓였다.
밀가루로만 수제비를 하기엔 양심상 걸리는 게 많았다. 명색이 다이어터인데, 순도 100% 밀가루는 허용할 수 없었다. 문득 생각난 게 귀리였다. 식이섬유도 많고 단백질도 많고, 건강 프로그램마다 칭찬의 칭찬을 받는 귀리. 귀리라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귀리를 갈았다.
귀리만으로 반죽하면 쿠키 반죽처럼 뚝뚝 떨어지는 찰기 없는 반죽이 될 수 있으니 밀가루도 조금 넣고, 한때 해독주스를 만들겠다고 사두었던 비트를 갈아서 비트즙으로 반죽을 했다. 그렇다. 이건 조금 실험적인 수제비이다.
이전과 동일하게 주부비책 우리바다 다시팩을 넣고 팔팔 끓여준다. 3~5분 정도 끓인 뒤, 다시팩을 건져내고 감자와 반죽을 떼어서 넣어준다.
귀리 반죽은 생각보다 훨씬 찰기가 없다. 밀가루는 쫀~득하게 떨어지는데, 아무래도 귀리가루가 들어가다 보니 뚝뚝 끊긴다. 밀가루 수제비와는 달리 손으로 꾹꾹 눌러서 얇게 모양을 만든 다음 넣어주어야 한다.
반죽이 떠오르면, 국간장과 소금 살짝 넣어 간을 해준다. 그리고 애호박을 넣어 센 불에 호로록 끓여주면 수제비 완성.
처음 끓일 때에는 비트 색감 때문에 수제비가 자줏빛이었는데, 점점 익으면서 색이 빠지더니 다 끓이고 나니 소고기처럼 보인다. 핑크빛 수제비를 기대했지만(?), 어쩌다 보니 귀리만 남아버렸다. 투박하게 생긴 귀리 수제비를 한 입 먹어보니, 미끌미끌 넘어가는 일반 수제비와는 달리 뚝뚝 끊기고 거칠거칠한 식감이 느껴진다. 일반 수제비와 식감은 다르지만 훨씬 건강한 느낌이다.
밀가루 음식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했는데, 귀리가루를 넣어서 그런지 부담이 덜했다. 비주얼은 기대에 따르지 못했지만, 건강함만큼은 톡톡히 챙긴 것 같다. 요리하기 전에는 실험적인 레시피라서 걱정되었지만, 만들고 나니 제법 건강한 맛이 만족스러웠던 귀리 비트 수제비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