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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비타스 Feb 17. 2022

Andante e Cantabile

월광

 이 세상 최고 아이돌은 역시 '' 아닐까요?




 제주에 내려와 좋은 점 하나 꼽으라 한다면 달이 뜨는 밤을 온전히 감상한다는 것입니다. 때로 바람이 불거나 날씨의 변화가 생기기 직전 밤하늘에는 별빛이 선명하게 빛나죠. 제주의 밤하늘은 도시의 하늘보다 푸른빛으로 물듭니다. 군청빛 하늘에 휘영청 보름달 하나 떠서 높이 올라 세상을 비추면 밤길 등불이 뭐가 필요하겠어요?




 어쩌면 한낮 태양이 더 밝으니 그저 빛을 찬양하는 것이라 한다면 눈을 멀게 하는 태양을 감히 이길자 없겠으나, 그는 어쩐지 가슴에 품고 눈에 담아 즐기기엔 부담스럽습니다. 부담을 넘어 불경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하지만 달이라는 건 눈에 담고 가슴에 품어도 부담이 없습니다. 달 하나 따서 마음에 품는다 한들 무슨 죄가 될까요? 달은 무한하니 그 달을 따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한들 그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리도 없지요.





 달은 또 변화하는 즐거움을 주니 심심치가 않습니다. 본인의 태를 두르고 주기를 돌며 모양을 바꾸죠. 어느 날은 매력적인 요부였다가, 사랑스러운 소녀가 되고, 가련한 여인이 되기도 하니 그의 매력을 도저히 한 마디로 말하는 것 자체가 난제입니다. 줄리엣은 변화하는 달에 마음을 맹세하지 말라고 하지만, 달은 사실 제 본질을 변화시킨 적 없죠. 별의 움직임에 따라 본질은 잃지 않고 제 모습 바꾸며 세상에 잘 묻어나니 달이 가진 융통성은 가히 본받을만합니다.




 그러니 시대 불문 달을 보며 그렇게도 노래를 하는가 봅니다. 달에 세레나데를 보내고, 내 연인을 지켜달라 빌고, 가끔을 저주를 하고, 내 사랑을 이뤄달라는 마법을 부리기도 하죠.




 당신에게 달은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달은 영화 <프랙티컬 매직>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샐리는 사랑에 상처받는 사람들 목격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이죠. 그래서 그는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마법을 걸었습니다. 그 마법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없을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마법이죠.




 하나의 눈은 초록, 하나의 눈은 파랑

 그는 아주 친절하지.

 말을 앞으로도 뒤로도 탈 수 있어.

 그가 가장 사랑하는 모양은 별 모양이야.

 그 별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지.




 소망을 담은 장미꽃잎이 하늘로  두둥실 바람을 타고 올라가 달에 그 마음 보냅니다. 그 장면은 제게 달이라는 이미지를 가장 아름답게 각인시켜주었죠.




 시는 어떤가요? 역시 달의 시는 정읍사가 현존하는 노래 중 으뜸이라고 봅니다.




 달님 높이 떠서 세상을 비추어 주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한 부인의 애틋한 마음이 달빛이 되어 일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돕습니다.




이렇듯 달은 참 사람의 마음을 담아주는 큰 그릇입니다. 좋은 친구이며 연인이고 마땅히 동경할 여신이죠.




 클래식에서도 달은 오랜 친구이자 연인입니다.



 달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분은 역시 드뷔 시일 겁니다. 드뷔시의 달빛. 그 밤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죠. 별빛이 감히 달빛을 가리지 못합니다. 고고하게 뜬 보름달. 물가에 비쳐 땅에서도 은은하게 번져 대기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고 이내 혼자 길을 걷는 나그네의 마음에도 물들죠. 달빛의 색을 청각으로 가장 아름답고 감각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불안하고 도시적인 느낌의 달빛을 그려낸 분도 계시죠. 정재형 작곡가의 달빛이 제게 그렇습니다. 유럽의 도시에 달이 떴습니다. 달빛에 취한 외로운 사람은 피아노에 기대 고단함을 노래하죠. 그럼 달빛이 내려와 가난한 음악가의 작은 방 창문을 두드립니다. 어쩐지 불안정한 그에게 여신의 모습으로 내려와 등 뒤에서 포근하게 껴안습니다. 달은 수다스럽지 않으니 오히려 내가 수다쟁이가 되어보죠. 내 불안도 두려움도 어렵기만 한 사랑도 작은 입을 오므려 조근조근 속삭입니다. 그렇게 밤은 깊은 속삭임으로 물들어갑니다.





 제게 월광이란 베토벤 소나타 14번.



  확실히 베토벤의 월광은 무게감 있고 엄중합니다. 달빛이 느껴지신가요? 유감스럽게도 공부가 부족한 저는 아직 달빛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이 월광이라는 부제가 베토벤이 직접 지은 이름은 아닙니다. 유명한 평론가의 말이죠.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 호수,

그 위에 뜬 조각배를 연상하게 한다.





 제가 처음 들었던 월광은 학교에서였습니다. 한창 학교 축제로 들뜨던 때, 친구가 음악실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연주하는 걸 들었죠. 관객은 하나. 의자에 기대 호사를 누렸습니다.




  이 친구는 시를 참 잘 씁니다. 하나 제겐 좀 어려웠죠. 시는 아름답지만 무겁고 슬픈. 어린 나이에 생의 고단을   깨달은 아이의 시는 제가 이해하기엔 어려웠습니다. 그 아이가 연주하는 피아노. 당시에는 이 곡의 이름도 몰랐고, 단지 연주에 담긴 선율이 그 아이가 가진 아픔처럼 무거워 어린 마음에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후 친구에게 부탁해  배운 두 마디. 그 조차도 엉망이었죠.




 그날 이후 제가 피아노를 배운다면 이 곡은 꼭 완성해보겠노라 결심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연주자는 루돌프 부흐빈더. 느긋하고 나른하게 마음은 가볍게 내려두고 들어 보세요. 여러분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나요?


 

 제가 느끼는 곡의 전경은 이렇습니다.




 굳이 제게 이 곡이 달이라면 그 달은 구름 뒤에 숨어 있습니다. 만월임에도 두껍게 내려앉은 구름이 탐욕스럽게 달빛을 삼켰습니다. 침엽수가 빼곡한 어두운 산길.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죠. 무겁고 불안하게 우는 부엉이 소리. 심장을 졸이며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길 밑에 낭떠러지는 없을지 불안해하면서 걷는 우리의 고단한 인생. 낭만이라는 여행길을 가슴에 품어도 피어오르는 불안과 싸우며 걸어가야 하는 인생 여정이 떠오릅니다. 가는 길 곳곳 눈은 멀어 한 치가 보이질 않고, 사방이 날카롭고 사나운 것 투성이죠. 나뭇가지에 살이 찢기고 신발은 닳아 없어지고 가슴에 품은 꿈도 사랑도, 당연히 내 것이라 기며 누리던 것들도, 신의 장난으로 하나하나 빼앗겼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어 주저앉습니다. 인간이 처음 왔을 때의 모습처럼 제 손에 남은 건 그저 빈 허공. 주저앉아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려 원망조차 쏟아낼 수 없을 정도로 지쳤습니다. 소리도 낼 수 없는 감정. 감히 아프다는 말도 사치인 통증은 원망하는 마음도 집어삼켰습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까? 포기라는 게 어쩌면 신의 뜻이라 생각지는 않나요? 하지만, 이 악장의 끝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소나타는 계속 이어지죠.




 터널의 끝은 있습니다. 다시 일어서 조금만 더 걸으면 끝나지 않을 듯한 침엽수림의 끝이 보입니다.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 아지랑이 떠오르는 호수를 옆에 끼고 걷습니다. 발 밑에는 보드라운 꽃밭이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맨발이라도 괜찮습니다. 이 고난을 쉬게 해 줄 따스한 땅은 당신에게 안식과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약속이죠. 낙원은 당신을 위로하고 짧은 위로로 깊게 당신을 안을 겁니다.




 그리고 3악장. 당신은 다시금 달릴 수 있을 겁니다. 잠시의 달콤한 휴식 후 당신은 꿈을 위해 달릴 겁니다. 기꺼이 이 인생을 고민하고 치열하고 태우며 살아가 보죠.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면, 온화하고 평안함만 추구하기보단 세상과 기꺼이 싸우고 내 것을 찾는 전쟁 같은 하루도 기꺼이 받아들일 겁니다. 내가 돌아갈 낙원은 이미 보았고, 나는 그곳을 내 의지로 떠나왔으니 멋지게 살아 보이죠. 다시 낙원으로 드는 날까지 말이에요.




 연주가 끝났습니다.

 고생한 연주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이제 여운은 온전히 당신 몫이죠. 몇 악장이 마음을 가장 가득 채웠나요?




 1악장. Adagio sostenuto?

 2악장. Allegretto?

 3악장. Presto Agitato?




 역시 전부가 아닐까요? 이 모든 것이 순환되지 않으면 그 어떤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에게 베토벤 소나타 14번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이 14번에 어떤 이름을 붙이고 싶으신가요? 클래식과 이야기는 좋은 친구죠. 그러니 굳이 이 노래는 하늘의 뜬 달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 자체로 완벽한 베토벤 소나타 14번. 어쩌면 달빛이라는 족쇄에 묶여, 오히려 그 빛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달도 그것은 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 곡에도 자유를 주죠. 여러 가지 형태를 바꾸며 멋을 뽐내는 달처럼, 그의 매력도 하나씩 추가해 주고 싶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지어주신 이름도 제게 들려주세요. 그럼 제 마음속에 그의 새로운 모습 하나 더 새겨놓을게요. 더 깊게, 깊게 사랑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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