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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상은 Oct 13. 2021

날 변화하게 만든 순간

선생님한테 업혀보신 분

 유년시절을 떠올려보면 또렷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나 한 장면은 나의 인생을 바꿔준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날 교회 선생님이 (믿을 수 없지만 모태신앙, 지금은 무교) 엄마를 붙잡고 “상은이는 6세 반에 계속 남는 게 좋을 것 같아요. 7세 반에 가면 적응을 못할 거예요.”하더란다. 천사 같은 우리 엄마는 의외로 용감하고 강단이 있어서 “아니에요. 적응할 거예요. 올려 보내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 준비 시간, 우리는 무슨 춤을 준비했었는데 꿈쩍도 안 하는 나 때문에 선생님도 고생이 많으셨을 것이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어린 나는 소극적이고 매사 수줍어하는 아이였다. 특히나 사람들 앞에 나서서 하는 일은 더 그랬다. 그 앞에서 움직인다는 자체가 부끄러워 항상 몸이 굳어있었다. 발표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손을 들기 싫어서 꾹 참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지 싶지만 그때의 나도 이유가 있었겠지..

 아무튼 엄마는 내심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잘 해낼 거라 생각을 하면서도 참관 수업을 다녀오면 한층 시름이 깊어졌었다고.. 그런데도 친구들과는 잘 지내서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유독 따뜻하고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수학경시대회에서 만점을 받았다. 내 평생 약점은 수학이다. 완전 문과형 인간인데 초등학생 때는 머리가 잘 굴러갔나 보다. 아무튼, 선생님이 나와 어느 한 친구를 앞으로 불러내셨다. 그러더니 우리가 너무 기특하다며 업어주신다고 하시는 거다. 그 순간의 감정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선생님의 등에 업혀 함박웃음을 지었던 내 표정은 생생하다.

 그때부터였다.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 등에 업혀 축하를 받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두려운 일은 없었다. 2학기 때 반장을 하게 되었고 아마 그때부터 감투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ㅎㅎㅎ 그리고 그 해부터 아나운서를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인생을 달라지게 하는 건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일상에 한 순간, 사소한 일들이 나를 깨우고 변화시킨다. 문득 화장을 하다가,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보다가 깨달을 때도 있다. 아직까지도 난, 인생의 핸들은 늘 좋은 방향으로 향해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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