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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Jan 10. 2024

너희들 때문에 사는 거야.

상처 주는 방법밖에는 몰랐던 어른들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처음부터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보다 7살 아래인 엄마는 결혼 후 아빠가 경제권을 넘기려 했으나 거부했다고 한다. 아빠의 급여가 엄마가 생각하기에 큰돈이라 겁이 났다고 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며 종종 후회하듯 말했다.


엄마의 결혼 생활은 1년 만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아빠는 당시 서울 아파트 가격만큼의 빚을 졌고 그것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엄마는 죽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엄마를 현실로 끌어올린 것은 뱃속에 있던 동생과 나였다고 한다.


너희 때문에 산다는 의미는 단순히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저 남자와 산다.'로 바뀌었다. 말버릇처럼 반복되던 엄마의 다짐은 동생과 내가 결혼한 뒤에 '황혼 이혼'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제야 엄마는 보다 편안해졌다.


돌아보면 부모님의 불화는 늘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24시간 동안 정말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눈에 아빠는 술 먹는 배짱이었다. 아빠도 나름 일을 하셨지만 12시간 가게일 외에 새벽과 늦은 밤까지 집안일을 하던 엄마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저녁 장사 때 손님이 조금 줄어들기 시작하면 아빠는 슬쩍 사라졌다가 얼큰하게 술을 마시고 나타났다. 그동안 가게 뒷정리는 엄마의 몫이었다. 가끔 나가서 엄마 일을 도우던 나도 진저리가 날만큼 아빠의 취한 모습이 싫었는데 엄마는 오죽했으랴. 거기서 멈추면 다행힌데 집에 온 아빠는 애정 표현을 한다며 엄마와 딸들을 앉혀놓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지만 쓰러지기 일보 직전으로 피곤한 엄마에게는 괴롭힘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결국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아빠도 함께 소리를 지르며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엄마는 무책임하다고 아빠를 무시했고 아빠는 엄마가 예민하고 까다롭다며 비난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기보다는 서로의 잘못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건드렸다. 싸움과 전혀 상관없는 기억들은 휘발유처럼 엄마 아빠의 부정적인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말은 칼처럼 변해 상대방을 공격했으며 상처는 나날이 늘어났다. 반복되는 싸움에 지칠 만도 한데 남아있는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 서로를 비난했다. 그렇게 20년 동안 반복되었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하루빨리 헤어지기를 바랐다. 왜 이렇게 싸우면서 사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엄마 아빠는 힘든 현실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비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계획대로 또는 기대처럼 살아지지 않는 인생이 버거운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 삶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가시가 돋아난 것이다. 반복되는 실패에 자존감은 부서졌고 상대의 별거 아닌 시그널을 공격으로 받아들였던 부모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마음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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