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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Dec 20. 2022

추위의 한복판에서도

누구나 가치 있는 여행을 한다.

  어느덧 견디기 힘든 더위가 가고 그만큼 또 견디기 힘든 추위가 찾아왔다. 나는 언제나 더위보다 추위에 약한 편인데, 그래서 이렇게 겨울이 다가오면 올해는 또 어떻게 추위를 견딜지 걱정이 되곤 한다.


추위는 상실과 닮았다. 여행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짧은 여행에서는 느끼기 힘든 독특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마치 여행이 끝난 후에 느껴지는 허탈함, 그리움, 부질없음 등의 감정과 비슷한데 이를 여행하는 중에도 느끼는 것이다. 매번 한 도시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다른 도시,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기대감과 함께 이 오묘한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상실감과 비슷한 이 감정은 어쩌면 추위와 닮았다.


  숙제하듯 여행했던 때도 있었다. 꼭 그 기간 안에 끝내야만 하는 일처럼. 주어진 시간과 비용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 한 나라, 한 나라를 거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설렘을 느꼈지만, 그 설렘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또다시 이동하고 숙소를 잡고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짐을 풀고… 긴장에 긴장이 계속되는 날들. 한 지역의 여행을 끝마칠 때마다 느껴지는 상실감 때문에 날이 춥지 않아도 추위를 느꼈다.


  그러나 추위는 사람을 더 돈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온기가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하는 것처럼, 따뜻한 곳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사람들 틈에 있게 되는 것처럼. 혼자가 외로운 우리는 추울수록 더 끈끈해지곤 한다.


상실감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허탈한 경험은 남은 것과 남은 사람들을 더욱더 소중하게 만든다. 서로를 더 찾고 서로를 더 가까이 있게 한다. 여행에서 느낀 상실감과도 비슷한 그 감정은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더 생각나게 했고 스쳐 지나가는 동행들을 더 애틋하게 만들었으며, 온 마음으로 그 순간에 충실하게 했다. 오롯이 현재의 시간에 충실해 지금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도록 몰입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 다가온 올해의 겨울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춥게 만들 것이다. 여름을 끝마친 계절은 무대를 마친 가수처럼, 정년을 마친 퇴직자처럼, 여행을 마친 여행자처럼 또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상실과 허탈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여름의 추위가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견디는 정당한 추위니, 혼자만 외롭지는 않겠지.


무더운 여름에도 혼자서 추위를 견디던 이들에게는 어느새 다가온 겨울이 작은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더불어 그 추위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더 돈독해지고 더 애틋해지고 더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제 콘텐츠의 모든 사진은 여행 중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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