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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 Feb 04. 2021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순간들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한다.


  여행을 하면서 그 여행 중에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고 여행을 마치고 나서 돌이켜보니 행복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물론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마냥 행복한 추억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여행하는 당시엔 웃지 못하는 사건을 겪을 때도 있다. 대개 그 순간은 고생한 기억일 확률이 높다. 여행하면서도 이렇게 힘든 일 왜 하나 싶은 순간. 왜 타지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하나 하는 순간.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버스를 놓치거나 길을 잃었던 기억들은 당시에는 행복하다고 느끼진 못하더라도 돌이켜보면 하나의 추억으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오랫동안 두고두고 우리의 머릿속 한편에 자리한다.


  나는 특히 가난한 배낭여행자였기 때문에 그러한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있다. 여행 내내 공항에서 노숙하며 숙박비를 아끼고 세탁비를 아끼려 손빨래를 했다. 한번은 칠레에서 아르헨티나에 버스를 타고 도착했는데, 그날이 하필 주말이라 환전소를 찾지 못해서 밥도 못 먹은 채로 짐을 메고 무작정 걸었던 기억도 있다. 이런 식으로 여행 중 고생했던 기억은 셀 수 없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현재의 나로 만들어준 무척이나 가치 있는 사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의미 있었던 기억, 당시엔 심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재미있는 순간들이 되어버렸다.


  기억은 너무나 주관적이라 일분일초가 지날 때마다 탈색되고 변화한다. 우리는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힘든 일을 마주한다. 그런데도 다시 배낭을 싸 들고 길을 떠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기억들이 미화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힘든 일들을 이겨내려 시도하고, 이겨낸 후엔 '그때 힘들었어도 재미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도전을 준비한다.


  지금 당장 너무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도 나중에 지나서 하나의 에피소드로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나눌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고생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걸, 언젠가는 이 여행을 끝내고 나를 반겨주는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렵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이것은 나에게 하는 말과도 같다.


도전과 고생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또다시 배낭을 챙기자.







*제 콘텐츠의 모든 커버 사진은 여행 중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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