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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Feb 23. 2023

지나침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전차가 익숙한 정류장을 막 떠나려 한다. Oh. My. God. 내릴 역을 지나친 거다. 별내별가람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이미 차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남역이란다. 여기서 다시 돌아오려면 꽤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오늘 하루종일 뭔가에 집중해 있었다. 회사 일인데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하고 직접 촬영하고 편집에 내레이션까지 맡았다. 후반 작업은 물론 실력자 J와 팀장님까지 도와주셔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아무래도 들인 품만큼, 들인 시간만큼 자꾸 애정이 간다. 조회수가 잘 나오는지,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지 자꾸만 체크하게 된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된 느낌이었다. 돌고 돌고 돌고 돌아, 처음 그 열정을 되찾은 것도 같다. 역시, 영상은 설레는 일이다.


지금,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 술 마시고 정신 나갔던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내릴 곳을 지나쳐버렸다. 영상을 리뷰하면서 다음 콘텐츠를 뭘 할지 계속 생각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몸은 퇴근했는데 뇌는 퇴근을 안 했나 보다.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계획해 본다. 계획했다가 접고 다시 구상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고민하고 생각하느라 내릴 곳을 지나치는지도 몰랐던 거다.


지나치면 지나치게 된다고, 오늘의 지나침이 지나침을 알려준다. 지나치고 나면 돌아오는 길은 여지없이 지치고 만다. 단거리 달리기 아니니까. 장거리니까. 지나치지 말자. 지치지 말자.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말자. 딱 너와 나의 온기로 꽤 오랜 시간 따뜻할 수 있도록. 나에게 다가온 모든 것들을 그리 사랑해야지.



2023.2.23.

지나친 역에서 M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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