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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02. 2023

쿨거래

베이스를 바꿔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악기점에 전화를 했다. 사장님은 마침, 내가 찾던 그 베이스가 내일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예약금을 10만원 걸어야 한다길래 조금 생각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내일쯤 보내겠다고 답장을 했다. 해당 모델로 연주를 한 어떤 유튜버의 영상에 답글을 달았더니, 쉽게 들어오는 모델이 아니라며 있을 때 빨리 업어가라는 대댓글이 달렸다. 내가 거래하는 악기점 이름도 맞추길래 너무 소름이어서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수입악기단톡에 정보가 돌았단다. 더 고민할 것도 없는 것 같아 다음날이 되자마자 예약금을 보냈다. 여러분! 이제 이 악기는 제겁니다!


사실 지금, 월급에서 악기를 구매할 여유는 없었다. 아마 내년 봄 까지는 이렇게 빠듯하게 지내야 할 거다. 중간에 반기획 출판이라는 일까지 벌려 버렸으니 돈 나올 곳은 없는데 돈 들어갈 데가 너무 많다. 건설경기 하락과 함께 회사는 어려워져서 성과금도 복지비도 없어져버렸고. 음, 생각을 하다가 4만키로에 사서 9만키로까지 탄 차를 팔기로 했다. 지난 6년 간 내게 넓은 세상을 보여준 녀석이었다. 덕분에 장롱면허도 졸업했고 함께 사고도 겪었고 사람들과 기억들을 남겨주었던 녀석이었다. A는 재밌게 산다고. B는 차 없으면 불편할텐데. C는 좋은 금액 받고 잘 팔라고. D는 그렇게 점점 더 투자하게 되는 거라고. 다들 좋은 말들만 해준다. 그래 어른의 삶이란, 자기의 선택에 책임 질 수만 있으면 되는 거지 뭐.


업자는 차를 한참 살펴보더니 뒷 범퍼 수리 흔적을 보고 한숨같은 낮은 탄성을 냈다. 3년 전 경부고속도로 추돌 사고로 찌그러진 범퍼 수리를 너무 과하게 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냥 구겨진 부분을 덴트로 펴도 될 경미한 사고였는데, 차체를 건드리는 바람에 차가 굉장히 약해졌을 거라고 설명을 했다. 한 번 차체가 망가지면 만약 일어날 다음 추돌 사고에서는 아예 뒷자석까지 차가 구겨질 수 있다고 했다. 업자는 이런 차는 가져가기에 참 고민된다고 하더니, 결국 원하는 금액에 합의를 보고는 냉큼 사람을 불러 차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지만 뭐 이미 써버린 계약서를 무를 수도 없으니 그래,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내 인생 최대의 쿨거래였다. 함께 한 시간은 6년인데 헤어짐은 이렇게 순식간이구나. 시원하지도 않고 섭섭하지도 않았다. 그냥, 잠깐 슬픈 감정이 일었던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차를 살 일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당분간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 같다. 차는 없어진 게 아니라, 새 베이스가 되어 돌아오는 것 뿐이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야지. 원래 인생은 그런거니까.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고, 끊임 없이 무엇인가로 대체되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업자는 차키를 가져가면서 오래 전 달아놓았던 열쇠고리를 풀어 내게 건네주었다. 5년 전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기념품으로 샀던 것이었다. 남겨진 열쇠고리를 매일 쓰는 가방에 달아본다. 가끔은, 녀석이 그리울지 모르겠다.



20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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