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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디 May 04. 2024

학군지에서 노베이스로 고1을 시작한다는 것

네 속도대로 꾸준히 가보자

잠에서 깬 캘리는 밖이 환한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헉! 아이들 학교 늦었나?'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내 '아.. 학교 갔구나..'하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침 7시까지 고1 웬디가 나가고, 8시에는 중2인 핸리가 나간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창문을 열어 집안 공기도 바꾸고, 청소기도 돌리고, 설거지를 한다.

소소한 집안일들을 마무리하고 9시쯤 환율과 국내증시 움직임만 5분 정도 보고 잠시 눈을 붙인다.

요즘에는 이렇게 오전에 잠을 보충하지 않으면 몸이 버티지를 못한다.


이날도 9시 반쯤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10시가 조금 넘어 깨면서 '여긴 어디? 난 누구?'의 상태로 일어난 것이다. 전날에 새벽 2시 반쯤 누워서 새벽밥 한다고 5시 반에 일어난 터였다. 하루 8시간은 자던 캘리는 요즘 잠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아... 이 생활을 3년 넘게 해야 한다는 건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고1이 된 웬디의 중간고사 시험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경쟁 없는 환경에서 특별히 위기의식없이 살아온 웬디는 환경이 달라지자 공부량도 달라졌다.

친구들을 사귀면서 이곳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해왔는지 직접 듣게 된 것이다.

아무리 엄마아빠가 이야기해도 소용없는 나이다. 오히려 친구들의 말 한마디가 더 영향을 끼치는 나이다.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늘 천하태평이던 아이가 자발적으로 학교야자를 신청하고, 스터디카페를 등록하고 11시까지 공부하고 오더니 요즘은 시험기간이라 12시-1시까지 하고 온다. 그래도 부족하단다.

"엄마, 나 3월부터 지금까지 막 논 것도 아니고 매일 공부했는데 왜 이것밖에 못했지? 나 그동안 뭐 한 거지?"

웬디는 친구들의 공부량과 속도가 비교가 되는지 많이 속상해한다.

"웬디야, 너는 그동안 이렇다 할 공부를 해본 적이 없잖아. 이제 시작이라고... 네 친구들은 몇 년을 이런 스케줄로 달려온 아이들이야. 네가 이제 한 달 반정도 공부한 걸로 그 친구들과 비교하면 안 되지. 너무 조급해하지 마. 이제 스타트를 끊은 거라고"

캘리가 봐도 웬디는 아직 공부에 요령이 없어 보인다. 효율적인 학습방법과 복습, 반복에 대해 얘기해 주었지만 시험이 다가올수록 웬디는 불안한 마음에 두서없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다시 멘탈 잡아주고, 웬디에게 맞는 공부량과 학습목표를 얘기해 주었지만 그 순간에만 눈빛이 반짝거릴 뿐,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왔다 갔다 하나보다. 왜 안 그러겠는가? 하지만, 이 또한 겪어야 할 과정이니 지금은 그저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이나 편하게 해주는 일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중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3학년 시기를 미국에서 보내고 온 웬디의 학습공백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과목은 수학이다. 엄마 캘리는 전형적인 이과형 머리인데, 웬디는 전형적인 문과형이다. 수학때문만은 아니고 웬디는 어릴 때부터 창작과 기획 그리고 상상력과 언어감각에 더 탁월한 모습을 보여왔다. 캘리가 웬디 어렸을 때부터 수학공부를 봐줬기에 그녀의 수리능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웬디는 수학을 감각적으로 푸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수학문제를 풀면서 끝까지 답을 내지 않고, 중간정도까지 풀고는 '대충 한 20?' 이렇게 답을 한 적이 있었다. 

"수학 답이 대충인 게 어디 있어. 정확한 답은 21이야" 했더니 "와~ 내 말이 맞지. 이 정도면 맞은 거야" 하면서 진심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이과형 캘리는 그런 웬디의 사고방식을 보고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었다. 하지만, 문과형 남편은 한바탕 웃더니 자긴 딸을 백퍼 이해한다고 했다.


 사람마다 잘하고 못하는 분야가 다 제각각이다. 웬디는 수학 쪽 학문과는 정말 거리가 멀다. 하지만 '대학은 수학으로 가고 취업은 영어로 한다'라고 하니, 대학 문턱이라도 넘으려면 수학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1 수학은 진작에 끝내고 입학한 친구들 사이에서 중2 수학까지만 배우고 함께 수업을 듣는 웬디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고난이도였다. 의외인 건 이 정도로 힘들면 포기할 법도 한데, 혼자 꾸역꾸역 헤쳐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모양이다. 선생님은 말의 속도까지 천천히 조절하시며 기초부터 가르쳐주신다고 한다. 친구들 역시 웬디 눈높이에서 설명을 해준다며 이곳 친구들은 공부도 잘하는데, 다들 너무 착하다고 칭찬일색이다. 


이런 웬디를 보며 캘리는 이제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볼까 싶어 과외, 학원, 관리형 독서실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알아볼수록 지금 아주 기초적인 학교 수업도 소화를 잘 못하고 있는 웬디가 추가로 학원수업과 숙제까지 소화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아니, 의문이 아니라 그건 무리이고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폴의 생각도 같았다. 심지어 지금 웬디의 상황에서는 선행이 아닌 중학교 과정을 더 단단하게 다지고 가야 할 판이다. 특히 수학은 고2, 고3 아이들도 단단하지 못한 기초 때문에 다시 진도를 되돌렸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급한 마음에 지름길로 가려다 오히려 멀게 돌아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런 생각 끝에 캘리는 웬디의 마음이 궁금하여 살짝 떠봤다.

"웬디~ 친구들은 학원 어디 다닌대? 너도 다니고 싶은 곳 있어?"

"응. 안 그래도 궁금해서 만나는 친구들마다 학원 어디 다니는지 다 물어봤어. 학원 수준도 물어봤고."

"그랬더니?"

"00랑 @@ 수학학원 두 군데를 제일 많이 다니는데... 엄마 근데 나는 지금 혼자 기초를 많이 다져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정승재쌤 50일 수학 그거부터 보려고. 그거 한 바퀴 빠르게 돌리고 그다음에 생각해 보려고. 그리고 내가 말한 그 전교 1등같이 생긴 친구 기억나지? 그 친구가 그러는데 남들 다 학원 다닌다고 꼭 다닐 필요 없대. 학원 다니면 숙제도 엄청 많고 그 과목에 시간을 엄청 써야 하는데 그런 것도 잘 생각해 보라더라고"

"그래. 그럼 일단 웬디 혼자 해보자. 어차피 사교육 받아도 결국 혼자 공부해서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3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길다면 또 길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네 속도대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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