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09
구직을 하다가 한때 유행한 질문을 떠올렸다. 카톡 '읽씹'과 '안읽씹' 중에 뭐가 더 나쁠까? 다들 치열하게 다툴 때 그 틈에 끼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봤지만 당시에는 어느 쪽이든 별로 상관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약속 시간을 정하거나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도중에 사라지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그럴 수 없다. 구직 일주일 만에 응답 없는 회사들을 통해 읽씹과 안읽씹의 해악에 대해 다시 고찰하게 됐다. 보낸 메시지에서 1이 사라지든 안 사라지든, 살면서 응답 없는 상대에게 불쾌했던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지금은 아니다. 이직 한 달 만에 퇴사해 비빌 언덕 없는 백수가 되고 나니 이 논쟁에 100% 공감할 수 있게 됐다. 회사들이여, 이력서를 받았으면 읽으십시오. 읽었으면 뭐라고 답을 좀 주십시오.
읽씹이 왜 나쁘냐. 1이 사라진 걸 안 순간 답을 기다리게 되기 때문이다. 읽지도 않았다면 읽을 때까지 '안 읽어서 아직 답이 없는 거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읽어버리게 되면 돌아올 답을 계속 기다리게 된다. 읽으셨나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가요?
[○○○에서 내 이력서를 열람하였습니다.]
[제출한 이력서를 ○○ 채용 담당자가 확인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런 알림으로 구직자를 잠시 설레게 해 놓고 영원히 답을 주지 않는 회사들. 합격 여부는 구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채용공고가 내려가고 한참 뒤에도 응답이 없으면 탈락인 것이다. 이런 전형을 겪을 때면, 채용도 브랜딩인 세상에서 뻔한 한마디를 보내며 탈락을 고지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묻고 싶다.
가장 얄미운 곳은 채용공고에 자기소개서 양식을 정해두거나 사전과제를 주고 구직자에게 읽씹을 하는 곳이다. 한 푼도 안 주고 과제와 작문을 시켰으면 전형 결과 정도는 알려줄 만도 한데…. 기대감만 주고 실망하게 만드는 읽씹은 정말 나쁘다.
읽씹이 나쁘다면 안읽씹은 구제불능이다. 알고리즘에 뜬 숏츠도 1초는 보고 넘기는데 사람을 뽑겠다고 공고를 올려두고 읽지도 않는 회사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이력서를 직접 열람하지 않아도 대충 어떤 이력서가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을 인사 담당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안읽씹이라고 해도 진짜 읽지 않은 것인지 미리보기로 보고 응답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셈이다.
일주일 넘게 안읽씹인 상태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미 뽑았나? 그냥 공고만 올려둔 건가? 미리보기로 확인한 건가? 그럼 포트폴리오는 안 본 거겠지? 공고 마감이 끝나고 읽으려는 건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다 의미가 없다. 어차피 뽑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괜찮다고 생각한 회사에서 안읽씹을 경험하고 난 뒤 읽씹과 안읽씹 중 뭐가 나쁘냐는 질문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안읽씹이 압승이다. 이건 읽씹보다 더한 희망고문이다. 시간을 들여 쓴 자기소개서가 읽혔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미확인의 상태가 가장 불쾌하다. 끝나지 않은 대화를 혼자서만 계속 되새기는 셈이다. 읽씹은 결국 거절이지만 안읽씹은 무시다.
백수 일주일 차, 이력서를 공개해 둔 곳에서 요상한 포지션 제안과 조건이 맞지 않는 제안을 받았다. '이게 뭐지?' 싶었지만 정중하게 거절하기로 한다. 거절 사유를 쓰면서 '나는 솔로'를 보며 거울 치료를 한다던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절대 저렇게 읽씹과 안읽씹을 하지 말아야지, 답하기 귀찮은 카톡이 와도 미리보기만 보고 안읽씹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거울 치료 최고. 안읽씹 최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