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벌띵

우진의 일이 있은 후 희수와 지영의 만남은 빈번해졌다. 지영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사이 카페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지영이 조실부모한 것과 큰아버지 댁에서 자라며 겪은 여러 사정을 들었다. 야근과 출장을 밥 먹듯 하며 집안일을 등한시하는 남편에 대한 지영의 속마음도 알게 됐다.



‘오늘 오후에 희수씨 집에 잠깐 들러도 돼요?’
휴대전화 너머 지영의 목소리엔 은근한 기대가 깔려 있었다.
“아, 어쩌죠? 오늘은 친구와 선약이 있어요…”
‘아…. 친구랑 약속이 있으시구나…. 희수씨 집에서 만나는 거예요?’
금세 의기소침해진 지영이라 희수의 마음이 불편했다.
“아뇨, 우리 아파트 앞 카페에서 먼저 만나기로 했어요. 그 후에 하린이도 데리러 갈 겸 친정에 함께 가려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라 부모님도 잘 아시거든요.” 지영의 서운함을 상쇄시키려 희수의 입에서 긴 설명이 이어졌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희수는 한눈에 승미를 알아봤다. 주변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소유한 승미는 어깨가 드러나는 긴 원피스차림에 화려하게 펌한 머리를 등 뒤로 넘기고 막 도착한 희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 희쑤~~!!! 아기 엄마가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거야?”
승미의 변함없는 과한 표현과 능청을 마주하니 희수는 결혼 전으로 돌아가는 착각이 일었다.
“그러는 너는 불로초라도 먹었어? 어째 볼 때마다 어려져?”
“으흐흐흐… 티 나냐? 의느님께서 강림하신?” 선머슴 같은 승미를 마주하니 희수는 힘이 탁 풀려 웃음이 터졌다. 어깨가 들썩거리고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그때였다. 짜랑~! 카페 입구에서 맑은 풍경소리가 울렸다.
손끝으로 눈가를 찍어내던 희수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지영, 지영이 카페에 들어오고 있었다.
엇!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순간 희수는 움찔했다. 당황한 희수와 달리 지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희수가 있는 테이블을 스쳐지나 여러 명의 무리가 모인 곳으로 향했다.
“아는 사람이야?” 희수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챈 승미가 물었다.
“응,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인데 이곳으로 돌아와서 처음 사귄 친구.. 비슷한? 그런 사람?” 갑자기 냉랭해진 지영을 친구라 해도 될까 싶었다.
“흠… 그래? 저쪽은 네 생각과 다른 것 같은데?” 두 눈을 가늘게 하고 승미는 턱으로 지영을 가리켰다.
“조심해라, 희쑤. 쎄~하다.”




카페 문을 나서기 전, 희수는 무심코 지영 쪽을 보았다. 잠깐 눈이 마주쳤지만 지영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친구들과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희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먼저 말을 걸었어야 했는지, 인사를 했어야 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승미가 기다리는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 생각은 흐려졌다.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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