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

by 에벌띵

현관 앞에서 지영을 마주쳤을 때 희수는 지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 바로 알아챘다.

지영의 아들, 우진이 한 손으로 팔꿈치를 감싼 채 울음을 참고 있었다. 피는 보이지 않았지만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 곁에 선 지영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누군가의 답을 기다리며 손톱을 씹어댔고, 그런 지영의 다리에 우진의 동생 지우가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지영씨 괜찮아요?” 희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제야 고개를 든 지영이 희수를 알아보았다.

“아… 희수씨. 우진이가.. 우진이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어… 그게.”

우왕좌왕하는 지영은 그 순간에도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119 불렀어요? 지영씨 차는 어디 있어요?”

“아니, 119는 안 불렀어요. 차는 남편이 출장 간다고 가져갔어요. 다른 사람들한테 전화 중인데.”

지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 더 설명하려고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 사이 우진의 울음이 커졌다. 희수는 세 사람을 바라보다 잠시 망설였다. 엄마에게 맡겨 놓은 딸이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제 차 타고 가요. 가까운 병원으로 가면 되죠?

희수를 향한 지영은 놀란 얼굴이었다.

“그래도 돼요?”

“그럼요. 우진이 빨리 치료해야죠.

희수는 절뚝이는 우진을 안아 올리며 차로 걸음을 옮겼다.




병원 대기실에서 접수를 끝내고 나서야 지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통증 때문인지 크게 놀란 이유 때문인지 오는 내내 울던 우진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 죄송해요. 진짜로요.” 지영이 희수를 바라보았다.

“뭘요. 괜찮아요.”

“다들 말로는 도와준다 하면서, 막상 이런 상황이 되면…. 다들 바쁘잖아요.”

지영의 목소리엔 공허함이 묻어났다.

“저는 늘 혼자서 버텼어요. 애들은 어리고, 남편은 바쁘고, 친정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웃고 다니니까 사람들은 제가 잘 사는 줄 알아요.”

희수는 바닥에 널브러진 우진의 신발을 가지런히 맞추며 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희수씨는 달라 보여요. 말이 없어서 그렇지… 단단하고 자신감 넘쳐 보였어요.”

그 말에 희수의 손이 멈칫거렸다. 자신감, 실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검사가 끝났다. 다행히 우진은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제야 지영이 울음을 터뜨렸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지영에게 희수는 말없이 휴지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계속 고마움을 표현하던 지영은 집으로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희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일 잊지 않을게요.”

희수는 미소를 지으며 지영을 바라봤다. 뭐라 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잊지 말아야 할 일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지영씨도 아이들도 많이 놀랐을 텐데 편히 쉬어요.”

현관 안으로 들어가는 지영 가족에게 짧은 인사를 하고 희수는 돌아섰다.


딸이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어두져 있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희수는 누군가의 삶에 받아들여진 듯한 느낌에 뿌듯했다. 그리고 그건 좋은 일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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