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가 ㅇㅇ아파트에 이사 온 지 6개월이 훌쩍 지났다.
희수는 번역가였다. 책이 많았던 이유였다. 가정양육을 하며 틈틈이 일한다고 했다. 큰 벌이는 아니라며 웃었다. 그 웃음이, 지영은 아니꼬웠다. 잘난 척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남편과는 주말 부부라 주중엔 혼자 딸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거짓이었다. 가까이 사는 친정 부모가 시시때때로 돌봐주는 데 무슨.
지영은 말 그대로 독박육아 중이었다. 일 년의 대부분, 주말까지 반납해 야근하는 남편이라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은 판타지였다. 게다가 친정부모는 일찍 여의었고 시어른은 차로 세 시간 거리에 살았다. 그런 지영 앞에 감히 독박육아 운운하는 꼴이 우스웠다.
또래 엄마들 모임에서 가까워진 혜진과 준영의 아이들과 준영의 집에 모였을 때였다. 그 둘이 희수를 모임에 끼워주는 건 어떠냐 했다.
“그러지 마, 희수 씨 엄청 바쁘대.” 온기가 사라져 가는 커피 잔을 감싸 쥔 손을 바라보며 지영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응? 물어봤어?” 준영의 집 거실에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주방으로 돌아오던 혜진이 되물었다.
“뭐…. 그걸 꼭 물어봐야 아나?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들어오는 거 같더라고. 하루 종일 어딜 다니는 건지…. 우리 애들이 그 나이 때 거의 집에만 있었잖아. 애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었지. 희수 씨는.... 집에 붙어 있는 꼴을 못 봤어.” 건너편 의자에 앉는 혜진을 바라보는 지영의 입이 삐뚜름했다.
“그래? 워킹맘이라 그런가?” 과일을 깎아 접시에 담던 준영이 말을 보탰다.
“워킹맘? 워킹맘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아? 집에서 하는 거잖아. 애가 잘 때 잠깐씩 한다던데?” 준영이 희수를 변명해 주는 모양새에 불편해진 지영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 그, 그렇지….”
“뭐, 바쁜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두고. 주말에 우리 애들 데리고 펜션 가려던 계획이나 마저 이야기하자.” 시원시원하니 리더 역학을 자처하는 혜영이 주제를 돌렸다.
요즘따라 지영의 주변 사람들이 희수에게 과한 관심을 가졌다. 남편을 따라온 낯선 도시에서 어렵게 사귄 친구들이었다. 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지영이 들인 공은 가볍지 않았다. 맘 카페와 문화센터 사이트를 뒤져 찾은 정보를 공유했고, 시어른이 보내 준 반찬이며 선물도 나눴다. 아무리 피곤해도 사람들이 부를 때마다 마다치 않고 나갔다. 그들이 하는 부탁도 기꺼이 들어줬다. 반면 희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틀 전, 아파트 현관에서 희수를 마주쳤을 때였다. 아이들 또래 엄마 모임이 있는데 함께 가려는지 물었더니 돌아온 희수의 답은 깔끔한 거절이었다.
“초대 고마워요, 지영 씨. 그런데 어쩌죠? 하필이면 그날 선약이 있어서요.” 정중했지만 차갑게 느껴졌다. 깊이 고민도 해보지 않고, 망설임도 없이, 산뜻하게 거절하는 태도라니. 지영은 그런 희수가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