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 이야기 1

by 에벌띵

처음부터 희수를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ㅇㅇ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사는 희수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거실 벽면에 가득 채워진 책을 보고 심장이 날뛰던 날을 기억했다. 다섯, 여섯 살 된 남매의 동화책으로 가득한 지영의 집과 달리 희수의 책장은 희수의 책으로 빽곡했다.

제 엄마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희수의 딸은 얼마나 깜찍하게 예쁘던지. 남의 집 침대 위를 방방 뛰는 지영의 남매와 다르게 희수 딸은 얌전하고 조용했다. 태생부터 귀한, 귀족의 피가 흐르는 아이처럼.

“이제 돌 지난 아이답지 않게 얌전하네요.” 지영이 희수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 아이 아빠가 워낙 조용한 사람인데 아빠 성품을 많이 닮았나 봐요.”햇볕이라고는 본 적 없는 듯 뽀얀 피부의 딸을 향해 웃는 희수는 우아했다.

아이답지 않게 얌전하다는 게 좋은 뜻만은 아니란 걸 알아채지 못한 듯 눈꼬리와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지게 또 웃는 희수였다. 지영의 고개가 갸웃, 옆으로 기울어졌다.


희수는 지영이 만나던 여자들과 달랐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았다. 희수 곁엔 친구가 없었다. 인형처럼 예쁜 딸과 조용히 산책하거나 희수의 부모로 추측되는 어른들과 함께였다. 뭘 하던 여자일까? 희수를 향한 지영의 궁금증은 나날이 커졌지만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고고하게, 지영과 동떨어진 세상에 사는 듯 보이는 희수가 부럽기도 아니꼽기도 했다.


“저기, 저 여자. 자기네 아파트 산다며?” 지영의 딸과 같은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 엄마인 민희와 카페에 마주 앉았던 참이었다. 빨간 유아용 트렌치코트를 입은 딸의 손을 잡고 카페 앞을 걸어가는 희수를 향해 민희가 손가락을 들었다.

“응. 그렇더라.”

“뭐 하는 여자래?”

“나도 몰라. 같은 아파트 사는 것만 알지 이야기해본 적도 없어.” 민희의 말투에서 느껴진 뾰족함 때문이었는지, 지영은 희수의 집에 초대받아 간 사실을 숨겼다.

“흥, 그래? 저 여자 좀 그렇지 않아? 말 붙이기도 힘든 데다 맘 카페 활동도 안 하는지, 이 동네에 어울리는 사람도 없어 보이던데. 좀 도도하지?”

“차갑게 생기긴 했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간혹 마주치는데 인사도 안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아는 척 안 해.” 민희의 말에 장단을 맞추며 지영은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어 호로록 마셨다. 자신의 거짓말을 민희가 알아채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 아침에도 곱게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던 희진을 애써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