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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Dec 20. 2023

뜻밖의 선물

2,3년 전부터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는 중이다. 매달 드는 책값이 부담스럽다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노안이 찾아올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여덟 살부터 지금까지 책이 가장 좋은 친구라 자랑하던 내게 노안은 피하고 싶은 현상이었다. 내 바람이 그렇다고 오는 세월을 막을 재간이 있나.  대비책이 필요했고 그건 바로 전자책이었다. 활자를 키워 읽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오디오로 들으면 되겠다 싶었다. 노안이 찾아온 후 부랴부랴 전자책에 적응하는 것보다 미리 익숙해지길 원했다.


덕분에 책값을 많이 아꼈다. 종이를 넘기는 재미, 연필로 줄 긋고 여백에 생각을 적는 맛은 현격히 떨어졌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휴대용 키보드를 들고 다니며 전자책 메모 기능을 백분 활용하는 기분도 좋았다.

그러다 결국 지난봄 즈음 노안이 찾아왔다. 독감을 호되게 앓은 후였다. 고대하진 않았어도 언젠가 올 거란 걸 예상하고 준비했던 터라 별 감정은 없었다. 단지 책 읽을 때, 손톱 깎을 때 눈이 조리개를 능숙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게 느껴져 불편했다.


한 달 전에 안경점에 들려 돋보기를 하나 맞췄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돋보기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로망 같은 게 있었다. 돋보기를 쓰고 책 읽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지혜로움이랄까? 개똥철학 비슷한 게 있어 돋보기를 맞추고 온 날 아이처럼 들떴다.

돋보기 덕에 책도 더 많이 읽고 손글씨도 마음껏 썼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절로 늘었다. 10분에 한 번씩 쉬어줘야 한다는 안경사의 당부를 홀라당 까먹은 채 그간 미뤄둔 걸 해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 아침, 휴대전화 알람을 끄려고 화면을 보는 데 오른쪽 눈에 지독한 통증이 일었다. 밝은 빛을 볼 때면 눈이 아팠다. 다른 일을 할 땐 아무 문제없는데 유독 빛에 그랬다. 가만 보니 전자기기가 뿜어내는 빛이 가장 문제라 휴대전화와도 강제 이별했다.

포도막염이라 했다. 눈을 싸고 있는 포도막에 염증이 생겨 일어난 통증이라는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이나 면역력 저하가 원인이라는 말을 들으니 눈이 아프기 얼마 전 호되게 앓은 식중독이 떠올랐다. 좋아하지도 않는 굴김치 몇 조각 먹고 걸렸던 식중독, 그때 떨어진 면역력이 문제구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 통증은 사라졌고 눈도 제 기능을 하나 했더니, 어라? 아팠던 오른쪽 눈이 영 침침하다. 포도막염의 부작용 중 하나가 시력저하라더니!!! 이런 젠장!


안경을 새로 맞춰야 하나 고민하며 왼쪽 눈을 가렸다 오른쪽 눈을 가리길 반복했다. 어느 정도 나빠졌는지 가늠했다. 안경을 쓰고도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꽤 컸다. 오른 눈으론 제법 큰 글씨도 흐릿하게 보였다.
기어이 문제가 생겼구나 낙담한순간이었다. 눈이 아픈 후로 돋보기 없이 책을 읽고 손글씨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엔 작은 작은 글씨를 왼쪽 오른쪽 번갈아 대었다. 헛!!! 오른 눈으로 작은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짝눈의 소유자가 되었다.
어느 때인가 안경사가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의 눈은 신기해서 양 눈이 각각 다른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했다. 서로를 보완하기 위한 비책이었다. 신묘 막기 하지 않은가!
실망스러웠던 마음은 한순간 회복되었다. 멀리 볼 땐 왼쪽 눈, 가까운 걸 볼 땐 오른쪽. 이 얼마나 상호보완적인 완벽한 조합인지.


선물처럼 온 짝눈이 제 능력을 상실하지 않게 잘 돌봐야겠다. 스마트한 기기들과 거리를 두고 자연을 자주 봐야지. 자주 쉬어주고 소중히 여겨야지!
뜻밖의 선물에 가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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