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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Jul 19. 2024

각자도생 실전 편 2

부모교육에 참여할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숙제를 하지 않는 자녀를 보면 화가 납니다. 이건 누구의 문제인가요?”

처음 이 질문을 접하는 대다수의 부모는 자녀의 문제라 말한다. 숙제를 하지 않는 자녀가 문제의 주범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부모의 문제이다. 아들러의 표현대로 하면 부모의 과제인 셈이다. 아이는 숙제를 하지 않는다고 속상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그걸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그럴 뿐이다.

이걸 완전히 이해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에야 ‘당연히 부모 문제지!’라고 자동반사적으로 답하지만 처음엔 큰 일 보고 뒤처리를 안 한 듯 마음이 불편했다.

훈련의 시작은 불편한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이건 누구의 문제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거였다.

나에게 막말하는 시부모님께 전화하라는 남편의 말이 불편하고 곤란한 감정이 드는 건 내 것, 자신의 부모님께 더 잘하길 바라는 건 남편의 것이다.

“지난 ㅇ월 ㅇ일에 전화드렸을 때 어머님께서 나에게 ㅇㅇㅇ을 이야기하셨어. 그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불편했는지 몰라. 어머님께 전화해서 또 비슷한 비난을 들을까 봐 겁나고 불편해. 그래서 당신 요청을 들어주기는 어려워. 당신이 부모님께 자주 전화드리고 필요한 이야기는 나한테 알려주면 고맙겠어. 부탁해.”

물론 이렇게 말하기까지 헤아리기도 부끄러울 만큼의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 쪽팔림과 좌절감을 여러 번 견디고 났더니 준비해 외운 대본처럼 술술 뱉어졌다.

홈스쿨링은 음…… 나의 한계가 어디인가 테스트하기 굉장히 좋은 도구이다. 백수 짓의 끝판왕과 매일 독대하다 보면 인내심은 쉽게 바닥을 드러냈다.

스마트폰과 물아일체를 이룬 아이를 목도하노라면 이성의 끈이 뚝! 소리를 내며 끊어지기도 다반사였다.

“넌 스마트폰을 손에 이식했니?”로 시작한 폭풍 비난으로 입을 연 것과 동시에 내 의식도 나를 공격했다.

‘그렇게 말한다고 네 딸이 바뀌니? 너는 부모님 말씀대로 했고? 잘~~ 하는 짓이다. 심리학이고 대화법이고 배우면 뭐 해? 한 방에 날려 먹는 꼴이 가관이다, 가관이야~’

스마트폰을 하는 건 딸의 일이다.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나는 건 내 감정, 내 소관이다. 자녀가 삶을 올바르게 살길 원하는 건 부모의 지당한 바람이지만 행동까지 통제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내 마음을 편안히 하고 내 일에 집중하는 것. 다만 딸에게 엄마의 염려를 알릴 필요는 있다.

“딸,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재미있다는 건 이해해. 하지만 엄마 입장에선 네가 염려되는 건 어쩔 수 없어. 가장 걱정되는 건 네 건강이야. 눈도 뇌도 악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돼서 심장이 조려지는 느낌이야."

너와 내 과제를 잘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각자의 공간과 시간은 필수다. 딸이 폰을 보든 게임을 하든, 내 눈에 덜 보여야 과제 구분 할 힘도 생긴다. 남편에게 불편한 감정이 생길 때도 마찬가지다. 내 공간에서 내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감정은 가라앉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생긴다.

그런 연유로 우리 가족은 ‘엄마를 혼자 둬’ ‘아빠 데이’ ‘딸이 원하는 거 해’를 만들었다.

“오늘은 ‘엄마를 혼자 둬’ 할 거야. 책방에 있을 건데 가능한 방해하지 말아 줘.”

“오는 토요일엔 ‘딸이 원하는 거 해’하고 싶은데 오케스트라 연습 안 가도 돼? 집에서 바이올린 연습하고 영화 보려고 해.”

“아침 먹고 ‘아빠 데이’하고 올게. 운동 좀 하고 도서관 갈 거야. 혹시 급한 일 있으면 문자 해.”라고 미리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 시간을 용인해 준 나머지 가족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배려해 줘서 고마워, 이해해 줘서 감사해’라는 인사를 전할 때 없던 감사도 생긴다. 신뢰는 덤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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