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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기저비 Nov 26. 2021

저도 선생님은 처음이라


2006년, 새내기 교사 시절의 일이다. 1교시 수업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교장 선생님의 호출로 모든 선생님과 교직원이 급히 교무실로 모였다. 안건은 아침 스쿨버스 탑승교사 선정 건. 교무실 안, 선생님들간 오가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학교 주변이 온통 황금 논이 넘실대는 이 곳. 우리학교는 고개를 삥 둘러 주위를 살펴보아도 논.논.논. 사방에 논이 전부이다. 드넓게 펼쳐진 논과 논사이에 간간이 몇 채의 집이 보일 뿐이다. 아이들이 살만한 가구가 얼마 되지 않는다. 학교 근방의 아이들을 싹싹 끌어모아도 세 자리수가 되지 않는 형편이라 모자라는 학생 수를 채우기 위해 마을 인근에서 아이들을 더 데리고 와야 한다. 이 동네의 낮은 학생 인구밀도 덕분에 스쿨버스는 아침마다 몇 개의 리(행정구역)를 돌고 돌아 아이들을 챙겨 온다.


지금까지 이 스쿨버스에 탑승하는 교사는 비정규직인 과학보조 선생님이셨다. 과학보조 선생님의 직함 대로라면 이 업무는 본래 과학보조 선생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보조 선생님은 학교 근방에 거주하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교사보다 일이 적고 여유 시간이 많은 편이었으며, 무엇보다 비정규직이라는 입장이었다. 아마도 자연스레 자신에게 더해지는 일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으리라.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여러 해 동안 과학보조 선생님의 일이었던 통학차량 탑승은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들의 문제가 되었다. 과학보조 선생님께서 다리를 다친 것이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집고 대형 버스에 오르락내리락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버스에 올라탈 교사가 필요했다. 긴급 상황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면 이 시골 깡촌에 살 일이 없다.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대부분 외지인으로 다른 지역에서 통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직장인의 출근 전 아침 10분은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산더미인 시험 시간의 마지막 10분과 같지 아니한가. 출근길 아침, 도로에서 어쩔 수 없이 보내야하는 통근 시간 한 시간은 내가 함부로 그 가치를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이 귀하디 귀한)아침 기상 시간을 30분 당기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일이었다. 삼십 분을 지키기 위한 선생님들의 보이지 않는 날 선 격투가 오고 간다.


“여기 선생님들은 대부분 천안에서 통근하시는 분이 많은데 한 시간 통근 거리를 삼십 분이나 당겨 오는 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만 통학차량을 탑승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애초에 교사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거죠? 저는 교사의 업무가 아닌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통학 버스를 탈 교사가 없어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는 건요? 그거야말로 교사의 직무유기 아닌가요?”

“아니, 그럼 과학보조 교사는 본인의 업무여서 지금까지 통학 차량을 탑승했습니까? 매일도 아니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봉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몇몇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교무실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누구에게 눈에 띌 새라 교무실 끝으머리에 앉아 없는 사람인 듯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리없이 조용히 앉아있긴 했지만, 사실 나는 아까부터 여기저기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며 뭐 마려운 개처럼 좌불안석이었다. 회의 시작부터 나 혼자만의 고민과 갈등으로 머릿속이 소란했다.


'이걸 물어봐? 말아? 괜히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혼나는 거 아니야? 아아, 근데 어떤 결정이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분위기에서 말해도 될까? 이 분위기에서 어떻게 말해! 너무 무섭단 말이야... 그래도 말해야 하는데, 안 그럼... 큰일인데... 아... 언제 말해야 하지?'

수십 번 고민하며 끙끙거리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하자! 나는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도 성인이고 같은 교사라구!' 

이제부터는 눈치 싸움이다. 결정적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촉각을 곤두세워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눈알을 굴리며 때를 기다렸다. 여러 선생님의 대화 속에 잠시의 침묵이 깔리던 순간, 드디어 잡았다. 말할 타이밍을! 나는 고요한 교무실의 적막을 깨고 수줍게 손을 들었다.


“저... 교무부장 선생님...”

“네. 이선생님, 의견 있으시면 이야기해 주세요.”

'아, 다행이다. 내 말을 친절하게 들어주신다.'

“저… 스쿨버스는 대형 버스이지 않나요...? 저... 저는 2종 보통 면허인데... 대형 면허가 없는데 그런 사람은 스쿨버스를 어떻게 운전해야 하죠? 죄송하지만 저는 스쿨버스를 탈 수가 없을거 같은데요... 제가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가 할 수가 없는 상황인거 같아서요. 저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드디어 말했다! 내가 용기를 냈다! 이야기했다!'


밖으로 터트린 말에 후련한 속도 잠시, 교무실 안의 분위기가 뭔가 찜찜하다. 이상한 낌새에 고개를 들어 교무부장님을 보았다.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부장님은 이내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신다.

“하하하하하 아… 이선생님… 우리는 버스에 동행하는 거지, 운전은 안해요. 운전은 기사 분께서 하신답니다.”

"......"

'아뿔싸, 쥐구멍 어디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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