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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의 끼니 안부가 제일의 관심사인 엄마 덕분에 밥 걱정을 하며 살지 않았다. 아침잠이 덜 깨 밥이고 뭐고 세수하고 옷 입는 것도 무의식의 일인 나에게 엄마는 조미김에 검지 손가락 두 개 정도의 밥을 올려 돌돌 말아서는 입에 쏙쏙 넣어주곤 했다. 밤늦게 귀가하는 날 "엄마아, 나 밥." 하는 나의 한 마디 주문이면 이미 그날 일을 끝내고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마친 깨끗한 식탁에 집밥 한 끼를 뚝딱 내어주는 일도 보통이었다. 하지만 주문의 효력은 독립이라는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사라졌다.
'내가 독립을 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엄마의 목소리 대신 사과 폰의 일루미네이트 벨소리가 내 모닝 요정이 되어버린 순간 이라던가, 집을 나서기 전 자연스럽게 가스, 형광등, 보일러 3종 체크를 하며 문을 잠그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라던가. 그중에서도 나는 퇴근 후 물 먹은 종이 상자가 되어버린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내가 먹을 저녁을 만들기 위해 주방에 섰을 때다. 내 끼니를(지금은 내가 돌볼 의무가 있는 아이들까지)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무거운 과업 앞에서 독립의 현실을 직면한다.
끼니를 준비하는 과정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내 있는 힘을 들이부어야 그나마 형식은 갖춘 한 끼 밥상이 차려졌고 늘 요리는 저속 주행 중이었다. 그래도 드디어 적응했다. 시금치 무침을 위해 시금치를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물기를 짜 양념을 넣고 슥슥 무치는 데까지 1시간에서 15분이 되었다. 이 정도면 일취월장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다.
시금치 꽁다리를 잘라내어 잎을 떼어내고 흐르는 물에 잎 한 장 한 장의 먼지와 흙을 문질러가며 씻던 초보자는 시금치 세네 뭉치를 물을 가득 담은 양푼에 집어넣어 살살 비벼 한 번에 씻는 숙련자가 되었다. 데치는 시간을 인터넷 블로그로 찾아보고 타이머를 설정한 뒤 물을 끓이던 과거에서 씻기 전부터 냄비에 물을 올려놓고 물이 끓기 시작하는 시점에 망설임 없이 시금치를 투하하는 현재가 되었다. 데침 시간 조절에 실패한 시금치를 쥐어짜 잎이 찢기고 너덜해져 곤죽이 된 녀석을 멍하니 쳐다보던 꼬마 요리사는 이제 적절한 시금치를 꺼낼 타이밍을 한국인의 ‘감’으로 캐치하는 수준의 베테랑이 되었다. 필요한 양념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외우며 소금 한 꼬집과 들기름 한 스푼의 적당량을 찾아 헤매다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좌절하던 하수는 소금, 후추, 깨소금, 들기름, 다진 마늘을 툭 집어 무심히 털어 넣는 간잽이 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나의 과격한 칼질에 난도질당했던 채소들, 옳지 않은 육수에 담금질당했던 고기, 과열된 프라이팬에 지져져 형체 보존하지 못했던 생선들. 셀 수 없이 반복된 각종 양념의 한 꼬집과 한 수저의 계량 트레이닝. 십여년간의 이 모든 이들의 노고와 수고 덕분에 지금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문제는 익숙해진 요리의 과정만큼이나 익숙해진 음식이 나에게 싫증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선명한 초록빛을 베이스로 들기름의 윤기와 통깨의 고소함이 더해진 시금치 무침이지만, 식탁에서 매번 등장하는 얼굴이 되는 순간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하는 비운의 옛스타로 전락한다. 이것은 비단 시금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밥상계의 셀럽인 투쁠러스 한우 등심도 일주일 걸러 등장하게 되면 그날 식탁에서는 드문드문 출연하는 반찬계의 조연인 멸치 볶음에게 핫스타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남편은 어릴 때부터 냉장고에 저장하는 반찬 없이 매 끼니 국과 찌개, 갖은 반찬을 바로 조리해 식탁을 차리시는 어머님의 손길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어머님께 한 마디만 투덜대고 싶다. “어머님, 아들 버릇 잘못 들이셨어요.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그 버릇 못주고 제가 고생하고 있어요.” 더구나 우리 집에는 남편의 주니어 1, 주니어 2도 함께이지 않은가. 저녁 시간이 되기 무섭게 “엄마, 오늘 밥은 뭐야?” 하고 메뉴 구성부터 묻는 녀석들이다. 이 전에 먹었던 메뉴가 겹치기라도 하면 “어제 저녁에 먹었던 메뉴네.” 굳이 확인시켜주지 않아도 될 일을 이야기해주는 친절함까지 갖추셨다.
싫증난 어제 음식을 리뉴얼하기 위해 오늘도 냉장고를 열어본다. 지난번 싼 가격에 5개 세트로 사 두었던 순두부와, 계란, 아직 먹어치우지 못한 배추와 고추가 눈에 걸렸다. 잠시 냉장고 문을 닫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창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의 이름을 재빠르게 새겨 넣는다. ‘순두부, 계란, 배추, 고추’ 이 재료의 조합으로 탄생하는 요리는 뭐가 있을까? 순두부찌개, 배추전, 배추 된장국… 이미 며칠 전에 해 먹었던 메뉴들을 슥슥 스킵해가면서 익숙하지 않은,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낯선 이름을 찾아 나선다. 고만고만한 요리에 몇 페이지를 넘겼을까 드디어 발견했다. '순두부 계란국’ 계란국은 먹어봤지만 순두부 계란국은 생소했다. 레시피를 후루룩 훑어 요리의 방향을 파악한다. 얼큰인지, 맑은인지, 소금 베이스의 간인지, 간장 베이스인지, 그 외에 다른 꼭 필요한 재료가 있는지. 어렵지 않다. 맑은 계란국에 순두부를 넣어 조리한 녀석이다. 충분히 할 수 있다. 간장 베이스이지만 나는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여기에 냉장고의 숙제 배추를 더 넣어보는 것으로 도전한다.
그리하여 탄생했다.
'‘순두부 배추 계란국’
순두부의 부드러운 식감 사이사이에 배추의 아삭한 식감이 톡톡 튀어나오며 장난을 치고, 자칫 맑다 못해 묽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국물을 계란이 풀어지면서 새우젓의 감칠맛과 함께 무게를 묵직하게 잡아주며, 그 속에 배추의 단맛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움이 한층 배가 된 새로운 음식을 탄생시켰다.
사람에게 다양한 기쁨이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큰 기쁨 중에 하나는 창조의 기쁨이 아니던가. 모든 작곡가, 미술가와 같은 예술인이 누리는 창조의 기쁨과 환희를 요리를 하면서 맛본다. 내가 매일 먹는 일상적이고 지루한 맛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합으로 탄생한 요리는 전과 달리 생생하고도 산뜻한 맛으로 느껴진다. 익숙하지만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요리의 과정은 과연 이 요리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맛일까 상상하게 만들고, 요리하는 순간에 약간의 흥분과 즐거움이라는 조미료를 쳐준다.
매일 새로운 모험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전 주저하지 말고 검색하라. 의심하지 말고 자신의 창조에 자신하라.
식탁 위에 올려진 오늘의 요리는 깨끗이 비워졌다.
덧붙임.
식사를 마치고 첫째 아이가 자리를 뜨며 한 마디를 던진다.
“엄마, 다음엔 그냥 계란국 해줘.”
오늘의 요리, 검색어를 입력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