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쩌기저비 Dec 29. 2021

처음, 그 미숙함에 대하여


-



첫사랑, 첫 키스, 첫 만남.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단 여러 단어들은 온갖 셀렘과 기대감, 풋풋함을 가지고 있다. 빳빳한 가방을 메고 처음 등교하던 때나 이성을 사귀고 처음 데이트를 하던 날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내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 어딘가가 간지러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름답고 반짝거리기만 할 것 같은 '처음'은 나의 교사로서의 '첫'날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즘 새내기 교사들은 첫 등굣날, 처음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을 어떻게 준비할까? 지금의 신규 교사들은 모두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나서 능숙한 정도는 아니어도 매끄럽게 첫 만남의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2006년. 내가 교대를 갓 졸업하고 교사로서 첫 아이들을 만나는 해였다. 생애 첫 제자를 만나는 첫 수업날. 내 인생사에 기념비적인 날이지만 그날을 위한 준비는 내 준비사항에 없었다. 한참이나 모자라고 어리석었던 나는 아이들을 만나면 수업이 그냥 되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20대의 파릇한 교사니까 아이들이 그저 선생님 바라기가 될 거라 생각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교실에서는 하하호호 웃음꽃이 끊이지 않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애정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고, 선생님 말이라면 두 눈 껌벅하고 따를 거라 생각했다. 아니, 나는 어릴 때 선생님을 그렇게 보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그렇게 단단히 오해를 했나 보다. 그 오해가 빨리 깨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2006년 3월 2일. 첫 발령을 받고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5학년 4반. 조금 일찍 등교해 교무실에 앉아 1교시 시작 시간이 될 때를 기다렸다. 수업 시간이 되자 부장님께서는 신규 선생님들을 교실로 안내해 주시며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리고는 본인의 교실로 들어가셨다. ‘후우’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긴장을 떨쳐내고 경쾌하게 교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교실 안의 대략 사십 여개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나에게 쏠린다.

‘이런, 이렇게 주목받으면 너무 쑥스러운데.’

나를 향해있는 40여 개의 눈들을 못 본 척 시크하게 지나치며 교실 앞 탁자로 발걸음을 옮긴다.

‘와, 런웨이의 무대를 걷는 슈퍼모델도 아닌데 교실 문에서 교탁까지 걸어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떨릴 일인가.’

입가에 어색하게 미소를 고정시키고 교탁 앞에 선 나는 교실의 책상과 의자를 살피며 앉아있는 아이들을 훑는다.



어? 빈자리다. 8시 40분. 이미 등교 시간이 지나있건만, 비어있는 책상과 의자 한 쌍이 눈에 띈다. ‘뭐지? 원래 빈자리인가?’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빈 책상의 연유를 물었지만 그들도 이 교실에 오늘 처음 온 학생들이다. 비어있는 책상인지 아닌지 알리 없다. 당찬 신규 교사는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비어있는 책상이라 단정한다. 그리고 ‘이제 내 소개를 할 차례인가?’ 아이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기대하며 말을 하려는 차, 한 아이가 내 말을 가로막는다.


“선생님, 복도에 누구 있는데요?”

“어? 누구?”

“아, 얘 00이에요. 00이.”

“00이가 누구지? 우리 반인가?”


얼굴을 보기도 전에 이름을 알아버린 녀석은 누구인가? 왜 이 녀석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복도에 서있는가? 여러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교실 뒤 출입문을 향했다. 주먹 한 개가 들어갈 정도의 문 틈 사이로 출입문 옆에 서 있는 작고 왜소한 남자아이가 보인다. 문을 열고 아이를 마주했다.


“너는 누구니? 5학년 4반이야?”

“……”

“우리 반 학생 맞아? 왜 안 들어오고 서 있어?”

“……”


아이는 도통 말이 없다. 원래 말을 못 하는 아이인 건지, 낯선 어른을 경계하는 아직 똘똘한 아이인 건지. 몇 마디 물음에도 대꾸하지 않는 아이를 두고 나는 교실 안의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이 친구 이름이 00이니? 00이가 우리 반 맞아?”

“네, 선생님 00이 우리 반 맞아요. 작년에 저랑 같은 반이었어요. 00이도 4반이라고 4학년 때 선생님이 알려줬었어요.”


‘맞구나. 우리 반.’

우리 반이 맞다는 그 아이는 교실로 들어오라는 나의 말에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 쉽사리 교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초보 교사는 당황했다. 이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낭만적인 교실의 모습은 검은 재가 되어 사라지고 내 앞에는 교실 입실을 거부하는 한 아이가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황한 초보 교사는 한 가지 생각에 꽂혔다.

‘이 아이를 교실에 들여야 한다!’



작전명: 입실 거부 학생 들이기 작전

STEP1. 설득과 회유


“안녕 00아, 나는 올해 처음 이 학교에 오게 된 000 선생님이라고 해. 너는 00이지? 선생님이 00이가 들어와야 친구들이랑 인사도 하고 수업을 할 수 있는데, 교실에 들어오는 게 어떨까?”

“……”

“처음이라 선생님도 낯설고 친구들도 아직 어색하지? 선생님도 그래. 근데 조금씩 익숙해질 거야. 일단 한 번 들어와 보는 게 어떨까?”

“……”


결과… 실패.



STEP2. 강요와 약간의 협박


“00이가 들어오지 않아서 다른 친구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는 거 알지? 네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가 가. 빨리 들어와야지.”

“……”

“정말 그렇게 계속 안 들어오면 선생님한테 혼난다. 첫날부터 선생님한테 혼나면 기분이 좋겠니?”

“……”


결과… 대실패.



STEP3. 물리적 압박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입을 다문채 움직일 기미가 없는 나는 결국 물리적인 힘을 아이에게 쏟았다.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며 교실에 강제로 아이를 들이려 했다. 아이는 팔을 늘여 복도 벽을 잡고 교실에 들어가지 않으려 끝까지 버틴다. 이윽고 내 옆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몇몇 아이들까지 복도로 나왔다. 아이들은 00이를 교실로 밀고 교실 안의 나는 잡아당기고, 00이는 악을 쓰며 출입문을 잡고 버티고.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나 나올 법한 시트콤 같은 장면을 현실에서 연출한다. 영화감독이라면 뛰어난 아주 극적인 연출이다.

'왜 이 녀석은 교실에 들어오지 않는 거지? 내가 뭐 잘못했나? 뭐지? 오늘 나 등교 첫날이야. 첫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너 왜 안 들어오는 거야. 얼른 들어오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아이의 팔을 잡아끄는 내 모습이란, 최악이라 칭할 수도 없을 만큼 최악이다. 아이는 버티고 버티다 질질 끌려 교실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것 또한 잠시 뿐, 문을 열고 도로 나가면 다시 원점이 되었다.

결국 난 포기했다.



첫날 그렇게 00이가 교실에 들어왔는지 아닌지 그 뒤의 기억은 오리무중이다. 뭔가 엄청난 충격을 겪고 난 뒤에는 약간의 기억상실증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이와 교실 뒷 문에서 팔씨름 경기를 한 첫 등교일. 아이들에게 보인 내 첫 모습이 우리 반 아이를 고무줄 늘이듯 잡아끄는 모습이라니. 이런 선생을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할수록 암담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을 뿐이야라고 위로해 보려 해도 이건 첫 단추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단추가 없는 옷이었다.

‘첫날 교실 문에서 아이와 난동 부린 여교사’라는 타이틀을 곱씹을수록 속상한 마음이 더해졌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첫 수업을 망쳐버린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너무 바보 같고 너무 미웠다. 학창 시절 제일로 싫어했던 중학교 시절의 영어 선생님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싫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첫날은 지울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그림이었다. 



그날 밤, 학교 바로 앞의 자취방에서 주인아줌마에게 들릴세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꺽꺽 소리를 내며 오열하고 오열했다. 우는 와중에도 내일 00이를 어떻게 봐야 할지, 나에게 돌아올 다음 날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 으허헝 콧물을 풀며 펜을 잡았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00이에게.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나는 선생님이 처음이라 아직 잘 모른다고. 내가 부족해서 잘 몰라서 그랬던 거라고.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니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티슈 한 곽을 다 쓰도록 눈물 콧물을 쏟으며 편지지를 채웠다.

다음 날 긴장된 마음으로 교실을 마주하고는 창문으로 교실 안을 힐끗 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말 너무 감사하게도 00이가 교실에 들어와 앉아있었다. 교실로 들어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은 지키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옆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그 아이 건너편의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눈치를 보며 수업을 하다 다른 아이들이 모르게 슬쩍 00이 책상 위에 편지를 밀어 넣었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얼른 고개를 돌리며 교과서에 얼굴을 묻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편지를 받아 들던 아이. 다른 곳에 시선이 향해 있었음에도 그 아이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얼굴을 어찌 잊으리. 아이는 편지를 받았다. 아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를 용서했고, 우리는 화해했다. 그 뒤 그 녀석과 나는 꽤 친해졌다. 아이들은 언제나 관대하다. 어른의 모든 걸 용서해준다.



교직생활 15년, 해가 바뀌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날은 아직도 긴장된다. 하지만 15년 전 첫날의 그 기분과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을까? 교사로서의 첫 학교, 첫 등교, 첫 수업, 첫 만남. 처음이라는 이름표를 2중, 3중, 겹겹이 붙여 놓았던 그날과 여러 번의 15번의 첫 만남 중 하나인 날은 크게 다르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날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초보, 이 까잇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