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해 Mar 25. 2024

왜 안돼? 수영(5)

독수리날개짓,인어,폭풍의 레일

아뿔싸, 늦었다.


1분 차이로 버스를 놓쳤더니 다음 버스가 12분이나 뒤에 온다. 허탈한 입맛을 다시며 어두운 거리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혼자 버스정류장에 덩그러니 서 있자니 느낌이 묘했다. 외딴 섬에 혼자 떨어진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하루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다는 우월감에 복잡미묘했다. 확실히 이른 새벽이 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인적이 없는 인도와는 달리 차도에는 차가 꽤 많았다.


아, 나도 차만 있었다면 고작 10분가지고 발 동동 굴리지 않아도 될텐데...!


새벽감성도 잠시, 순식간에 서러워진 뚜벅이는 타들어가는 똥줄을 안은 채 정확히 12분 뒤에 온 버스에 황급히 올라탔다.


그런데 오늘따라 버스 기사님은 또 왜 이리 느긋하게 가시는지... 쌩쌩 달리는 난폭 운전보다 훨씬 낫다는 걸 알면서도 마른 침을 삼켰다.


6시 땡 하면 강사님 한 분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다같이 준비운동을 한다. 이걸로 아직 잠들어 있는 근육을 충분히 풀어줘야 몸이 덜 무거운데 아무래도 오늘은 글렀나 보다.


아니나 달라 후딱 샤워를 끝내고 수영장에 입장했지만 이미 준비운동을 끝낸 수강생들이 레일을 돌고 있었다.


늘 가던 맨 끝 레일에 허겁지겁 합류했다.


그런데 또 희한하게 끝 레일에 수강생이 많아서 교통 혼잡이 야기되었다.


초급반은 끝 두 레일을 이용하는데 다들 왜 이리로 왔지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비교적 덜 붐비는 옆 레일로 훌쩍 넘어갔다. 지각생인 내가 옮겨야겠다 싶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오우,


사람들이 끝 레일로 몰린데는 이유가 있었다.


강사님이 시킨대로 자유형을 하고 있는데 수경 너머로 수영장 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꿀렁꿀렁대는 게 아닌가.


내가 지금 파도풀을 타러 왔던가 헷갈려 하면서 어푸어푸 거리며 겨우 한 바퀴 레일을 끝냈다. 물을 들이켜 매운 코를 부여잡은 채 넘어오는 파도의 근원지를 찾아 왼쪽을 바라보았다.


웬 오색빛깔 인어들이 넘실 거리고 있었다.


뿌얘진 수경을 벗고 제대로 보니 오리발을 찬 사람들이었다. 중급반인지 연수반인지 아무튼 그들은 전문가 포스를 내며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동작으로 꿀렁꿀렁 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오리발 색상도 꽤 다양했다. 형광 주황, 노랑, 빨강 등등


머...멋지다...


오리발을 찬 인어들에게 입을 헤 벌리며 감탄하기도 잠시, 수린이인 나에게 벅찬 문제가 있었다. 레일을 따라 자유형을 하며 갈 때는 괜찮은데 돌아올 때가 문제였다.


나는 자유형 호흡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하는데 돌아오는 길에 내 오른쪽으로 인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색빛깔 인어들이 창조해내는 해일이(어느새 파도에서 해일로 바뀜) 사정없이 나에게 밀어닥쳤다.


지금 내가 마시는 게 공기인지... 넘어오는 물인지 모,,,르,,,겄다,,,


거센 해일에 힘 없이 떠밀려가는 해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열심히 헤엄을 쳤다. 특히 레일 중간 즈음에는 갑자기 수위가 높아져서 더 힘들었다.


살기 위한 생존 본능으로 고개를 평소보다도 더 돌려대고 얼른 지나가고자 어깨도 더 쭉쭉 뻗었다. 그랬더니


오잉!?


자세가 오히려 잡히는 것 아닌가. 어깨의 회전도 잘 되고 호흡도 충분히 들이마셔지자 앞으로 더 시원하게 잘 나가졌다.


아니, 이럴수가. 아무래도 그동안 내가 몸 사리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나보다. 알게 모르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수영하고 있었던 건가!?


뜻밖의 독수리 양육법을 만났다. 독수리 어미는 어느날 새끼를 절벽에서 밀어버린다고 한다. 둥지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밀쳐져버린 새끼는 살기 위해 파닥 거리다가 끝내는 날갯짓에 성공한다. 그런데 독수리 어미는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걸 몇 번이고 반복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독수리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는 방법이었다.


오늘 어쩌다가 독수리 새끼처럼 거친 환경에 놓여진 수영새끼(어감이 이상하네, 수린이라고 해야겠다.)가 살기 위해 퍼덕거리다보니 터득된 것이 있었다.


기본적으론 몸에 힘을 빼는 것이 맞지만 확실하게 힘을 주어야하는 부분도 있었고 물의 흐름을 탄다는 느낌도 (인어들로 인해 반강제로) 조금 느껴볼 수 있었고 몰려오는 파도에 맞서 숨을 더 효율적으로 들이쉬기 위해서 위해서는 들숨만큼이나 물속에서의 날숨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쳤다.


오 한층 더 강해진 기분이다.


아마 오늘 내가 정시에 도착해서 이전과 똑같이 잔잔한 끝 레일에서 강습을 들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폭풍의 언덕같은 레일을 만나게 해준 지각에 감사해하며, 또 독수리 어미의 역할을 해준 인어들에게 감사해하며 생존수영을 무사히 끝마쳤다.


앞으로는 끝 레일 말고 여기서 해야지!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수영을 잘 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내 실력을 키우겠다!


...고 다짐하면서 더 이상 끝 레일에 가지 않았는데 꽤 오랫동안 코로 입으로 물을 마셨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나도 독수리 어미처럼 또 인어들처럼 멋지게 넘실거리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잘 어푸거렸다.




얜 그냥 멋지게 생겼구만!



작가의 이전글 철학의 맛, 구황작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