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이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타임캡슐 놀이..? 이거 뭔가 신박한데?’하는 머릿속의 계산이 끝난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타임캡슐에 넣고 싶은 것을 질문하자 아이들은 종이접기 작품을 넣고 싶다고 하였고
나는 “그래? 그럼 종이접기 작품이랑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자.”라고 대답하였다.
종이 접기와 함께 편지 비슷한 것을 완성했고
그것들을 편지 봉투에 곱게 접은 후 교실 한 구석에 타임캡슐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우리는 타임캡슐 앞에서 언제 이 타임캡슐을 꺼낼 것인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10년 후에 보겠다는 아이, 20년 후에 보겠다는 아이, 100년 후에 보겠다는 아이 등
서로 각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였고 결국 과반수의 선택으로 ‘10년 후’가 결정되었다.
아이들의 토론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웃겼다.
한 달 후면 졸업을 할 것이고 아마 타임캡슐은 일주일도 가지 못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타임캡슐은 그저 스치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데 왜 저렇게 진심으로 토론하는 걸까?
‘타임캡슐’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속마음으로 ‘바보들’이라고 말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관심은 찰나이다.
그들은 온정신을 쏟아 놀이에 집중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방향으로 관심을 돌린다.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계속 유지해나가면서 놀이를 진행한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놀이의 연결된 흐름을 위해 늘 머릿속에 큰 목적과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다.
놀이의 흐름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로 연관성 있게 이어지는 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내 기준에서 중요하지않았던 타임캡슐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오늘은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완성도’라는 목적에만 얽매여 사실은 순간의 소소함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그다음 또 그다음을 생각해 왔기에 ‘지금 여기’를 즐기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시작을 하기도 전에 늘 결론부터 맺는 나에게
계획이나 목적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잊고 있던 것을 문득 깨닫게 해 주었다.
내가 비웃었던 아이들의 바보스러움은
그들이 현재에 집중하며 세상을 즐겁고 신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아이다움’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치이고, 피곤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성인들에게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과 같은 ‘완벽한 아이다움을’ 갖기는 힘들것이다.
적어도 주말에는 신날 수 있지만 평일에는 절대 불가능이라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래도 정말 가끔씩은 아이들처럼 행동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만 재미있으면 되지.”라는 해맑은 생각을 장착하고
남들 눈에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에 미칠 듯이 몰입해 즐거움을 얻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바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이다움’의 매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