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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05. 2024

네가 뭔데 남의 자식 걱정이야

나나 잘하자

유아기 때부터 아이와 함께 그룹치료를 받는 친구가 있다. 우연히 조직된 또래의 세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큰 변동없이 몇 년째 그룹수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회성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확답하기 어렵다. 아이의 성장을 가능케하는건 눈에 보이는 것도 많지만 치료 이외에 갖가지 자극과 환경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 그룹수업이 굉장한 도움이 됐는지는 주양육자인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분명한건 하지 않는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리라하는 것과, 대학병원에서도 사회성 기술 향상을 위한 그룹 치료를 권장했다는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센터에서, 같은 동네에 비슷한 인지 수준을 가진 또래 친구들과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커다란 행운이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치료를 함께 받는 세 친구들은 언뜻 봐서는 비슷해보이지만 각기 다른 진단명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공통점도 많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도 꽤나 많다. 발달에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은 다 똑같은 특징을 갖고 있을 것 같은데 스펙트럼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위치해있는 지점은 각기 다르고 고유의 개성이 있다.


어떤 친구는 말은 빨리 트였는데 사회성만 좀 늦었다든가, 또 어떤 친구는 말도 잘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데 감정조절이 어렵고 피해의식이 과하다든가, 내 아이처럼 언어도 사회성도 느린데 인지습득능력은 의외로 높다든가 하는 식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발달장애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아이마다 수천가지, 수만가지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다.


같이 수업을 시작한 친구 선우(가명)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자주 이 말을 한다.


"죄송한 말일지도 모르겠는데, 진짜 OO이만큼만 따라가줬으면 좋겠어요.."


같이 그룹수업을 시작하던 유아 시기에는 선우나 내 아이나 오십보백보 상태가 비슷했다. 누가 더 낫다 모자라다 할 것 없이 비슷한 상태였다. 이상하게도 선우의 사회성은 몇 년간의 정성과 다방면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고, 내 아이는 선우 엄마 시각에서 봤을 때 많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센터 대기실에 앉아 늘 비슷한 푸념을 하며, 대학병원 교수님 진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임신 기간과 출산에 어떤 특별한 이슈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 센터 엄마들이 각별히 큰 힘이 되었고 의지가 되었다.


특히나 선우 엄마는 내가 근래에 친해진 사람들 중에 가장 선한 사람이었다. 선한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이 분을 보면 선하다는 말 말고는 딱히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태도가 몸에 배여있음은 당연하거니와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정신을 일상에서 매번 실천하신다. 요리 실력도 남달라서 매일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데 꼭 우리 집에도 넉넉히 싸주는 거다.


예전 시골 할머니댁에 가서나 볼 수 있었던 이웃간의 정같은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분이었다. 시골에 있는 시댁에 다녀올 때면 우리집에 꼭 들러서 식재료를 아낌없이 챙겨주었고, 맛있는 음식을 하면 꼭 예쁜 도시락통에 싸서 갖다주시는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 보답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솜씨가 없는 나는 성의없게도 카카오톡 치킨 쿠폰 따위로 미안함을 갚으려고 했는데 진짜 이런거 안하셔도 된다고 정색하셨다. 손이 커서 하다보니 양이 많아져서 나누는것 뿐이라면서 한사코 거절하셨다.


선우네 엄마를 보면서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저런 분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눈동자 크고 심성만큼이나 눈빛도 맑다. 또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신데 한 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선우 낳고 기르면서 믿음이 많이 약해졌어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자꾸 흔들리더라고요."


또 한번은 이런 말도 했다.


"차라리 몸이 아픈거라면, 수술 받고 낫고 회복하면 되잖아요. 차라리.. 그런데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까.."


일주일 내내 센터 치료를 쫓아다니고 등산을 하고 두발 자전거 연습을 시키고 공놀이를 하고, 각종 체험을 시키는 등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선우 엄마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선우의 성장은 더뎠다.


또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남들 눈에는 나름 티가 덜 나는 내 아이가 선우 엄마 눈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4년 넘게 함께 치료를 받으면서 늘 서로의 아이를 보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은연중에 알게된 까닭이다.


초등학교 적응을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담임복이 많았던지 작년까지 선우는 선생님들께 사랑을 받았다. 완전통합으로 수업을 하기에 조금 어려운 점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선생님들께서는 아이가 가진 장점을 바라봐주려 노력하셨고 감당하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올해 담임선생님께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아이를 데리고 수업하는거 너무 힘들고 능력 밖이라서 완전통합보다는 도움반에 보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신것이다. 그 선생님을 탓할 수는 없다. 20명 이상의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하면서 일대일로 지도해줄 수 없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는 더 나은선택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선우 엄마는 너무나 힘들어했다. 일반반에서 보통 아이들과 보통의 수업을 함께 듣기 어려운 상태라는걸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로 듣는 일은, 하루 이틀에 받아 들일 수 있는게 아니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선우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받아들여야 하는데.. 선생님 말이 다 맞는데. 용기가 안 나고, 힘드네요.."


안타까웠다. 뭐라고 해 줄 말이 없었다.

같이 부족한 아이를 키우면서 치료 받는 입장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뭐라고 어떻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할지 도무지 머릿속이 텅 비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픔을 함께 하고 싶은데, 고통을 좀 덜어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남편도 많이 안타까워했다. 동네 엄마들 이야기에 좀처럼 관심도 흥미도 없는 사람인데, 선우 엄마만은 진짜 선한 사람인것 같다며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물다며 칭찬하곤 했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입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칭찬했지만 질투심 하나 일지 않았다. 무신론자인 남편은 그것 보라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우 엄마아빠처럼 좋은 사람들이 어디 있다고 이렇게 힘들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선우 엄마 생각에 마음이 아파서 가슴이 답답해왔다. 따지고 보면 내 처지도 남다를것 없지만, 그나마 더 나아보이는 내 아이를 부러워한다는 사실도, 좀처럼 성장이 더디고 시시때때로 통제 못할 행동으로 엄마를 힘들게하는 선우의 모습을 떠올리니 체할 것만 같아서 콜라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아이는 여느때처럼 아침밥을 먹고, 약도 복용하고 학교갈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쇼파에 드러눕더니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배가 너무 쿡쿡 쑤시고 아파서 도저히 못 움직일정도라고 울상이다.


'내가 또 속을줄 아니..'


사실 1,2학년 때는 애가 조금만 아파서 학교 못 가겠다고 하면 그대로 쉬게했다. 1학년 때는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릴 때라 약간의 감기 증상만 있어도 인정결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 적응도 힘들어할까봐 걱정이 많던 때이기도 했고, 실제로 코로나며 독감이며 유행성 질병은 다 걸린 덕에 일 년간 총 30일은 쉰 것 같다.


2학년 때는 그전에 몰랐던 조퇴라는 개념을 애가 알게 되면서, 자기도 좀만 아프면 보건실 갔다가 조퇴하고 싶다고 했다. 자주 배가 아파했는데 대부분은 숙변 탓이었다. 진료 받아보니 대개 초등 저학년 때에 숙변으로 갑자기 복통이 오는 경우가 자주 있기도 한데 크게 심각한건 아니고, 유산균을 처방해주는 정도였다.


약간의 복통에도 배가 아파 죽겠다며 엄살을 부리면서 학교를 쉬겠다고 하거나, 조퇴를 하겠다며 담임선생님을 통해 연락이 오기도 했다. 선생님을 워낙 무서워하기도 했고, 등교 거부도 심할 때라 그냥 다 받아주었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만큼, 이렇게 애가 갑자기 아플 때 대기조 역할을 할 수 있다는건 나의 큰 임무 중 하나였다.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게 사뭇 감사해지기까지 하면서 아이가 학교에 있기 싫으면 언제든 집에 와서 쉴 수 있도록 마음 편히 해주는게 내 역할이라 믿었다.


아이의 엄살이 심해지기도 하고, 학교는 가기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인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것 같아서 조금 꺼리침하긴 했다. 언제까지나 내가 애만 바라보고 대기조로 저를 위해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고작 이런 역할이나 하나 싶어서 한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부족한 사회성 때문에 교우관계 때문에 힘들어할까봐 여태 늘 받아주었지만 점점 그 횟수를 줄여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침부터 대뜸 배가 아파다면 엄살(?)을 부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다니 걱정이 되었다.


'또 엄살 부리면서 등교거부를 하는걸까. 아니야 진짜로 새학기 증후군일수도 있어. 저번주에는 새학기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구내염까지 낫었잖아. 어리지만 학교 수업 시간도 늘어나고 새 친구들 사이에서 저도 힘들겠지.' 짠한 마음이 더 들어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배를 주물러 주었다.


어차피 심각한 복통은 아니고 숙변으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같았다. 주물러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나아질 것 같아서 한참을 문질러주고 주물러주었다. 온갖 애정 표현을 다하고 물고 빨고 안아주면서 이번 주 학교 생활 잘하면 주말에 너가 원했던것 다 들어주겠다며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은 시간까지 아이 배를 주물러주고 달랜 다음에 겨우 등교를 시켰다. 너무 아파서 쓰러질 것 같으면 조퇴해도 된다고, 그래도 왠만하면 견디고 수업 다 듣고 오라고 응원해주었다. 아이는 힘없이 걸어갔다. 배가 아픈 것보다도 그냥 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이 더 크다는게 느껴졌다. 그럴때마다 받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간지 30분도 안되서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1교시에 배 아파서 보건실까지 다녀왔는데 도저히 아파서 안되겠다고 한다고 조퇴시킬까요 물어보셨다. 그렇게 해주시라고 했다. 오전에 해야할 일들은 다 취소된 채 급히 집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됐다며 어차피 가봤자 엑스레이 찍고 또 숙변이라고 할텐데 가면 뭐하냐고 좀 쉬어보자고 했다. 쉬면서 기색을 살피고 통증이 지속적으로 느껴지면 가보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20분 정도 쉬는 척 하면서 누워 있던 아이는 이제 배가 안 아픈 느낌이라고 했다. 갑자기 화가 났다. 내가 그렇게 등교 전에 애쓰면서 달래주고 비위 맞춰주며 겨우 학교 보냈는데 1교시를 못 참고 집에 와버리다니. 늘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게 갑자기 못견디게 괘씸했다.


'나는 언제나 집에서 너 기다리면서 너만 바라보고 살아야되냐, 나는 그 정도 존재밖에 안되냐, 언제까지 애기처럼 좀만 아프면 집에 와버리고 조퇴할 생각만 하고, 엄마가 다시 출근이라도 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지 다른 애들은 엄마들이 일해도 1학년때부터도 잘만 적응하고 학원도 스스로 잘 가던데, 왜 이렇게 너는 느리고 나약하고 예민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거냐..' 하고 생각만 했다.


입밖으로 나오려고 했던 그 말들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내 눈빛은 숨기기 어려웠다. 등교 전보다 좀 냉랭한 말투로 아직도 배 아프냐고 간간이 물어보기만 했다. 아이는 슬슬 내 눈치를 보더니 점심 때가 되니 배가 고프댄다.


"아니, 아까 배아프다고 조퇴했는데 이젠 배가 고프다고?"


혼자 조용히 내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를 박탈해버린 아이가 밉고, 아침밥 차려서 학교 보내기가 무섭게 조퇴하고 와서 당연하다는듯이 점심밥을 차려내라는 아이의 말에 화가 난다. 나는 태생이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우리네 엄마들 유전자는 없게 생겨 먹었나보다. 언제까지 내가 애만 챙기면서 살아야하는지 한숨이 푹푹 나온다.




괜히 어제 남의 아이 걱정해서 내가 벌 받는건가.



내 아이 앞가림도 못하고 있으면서, 내 아이 새학기 증후군에 등교거부 하는것도 어찌하지 못해서 애걸복걸하는 주제에 네가 뭐라고 남의 자식 걱정한다고 우울해하고 답답해했냐 말이다.


선우엄마 걱정에 마음 아파하고 속이 뒤집어지는듯해서 괴로웠던 지난밤을 떠올리니 어이가 없다. 어련히 엄마, 아빠가 잘 키울라고 내가 뭐 대단하게 도와줄 처지도 못되고 그럴 방법도 모르면서 무슨 오지랖이라고 남 걱정하고 있었는지 스스로가 참 한심스럽다. 내가 마음 쓴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후회의 마음으로 조용히 다짐해본다. 남 걱정 말고 나나 잘하자. 남의 아이 걱정 말고, 내 아이 걱정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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