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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09. 2024

총선 덕분에 행복한 어린이

가뭄의 단비 같은 개학 후 첫 공휴일이라



"엄마는 어느 당 누구 뽑을 거야?"


몇 년 전 대통령 선거 때 아이는 지금보다 더 어렸기에 선거란게 뭔지 감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올해는 좀 커서 그런 건지, 신문, 방송 매체에서 연일 선거 관련 보도뿐이라 그런지 썩 선거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집에 우편으로 온 투표안내문과 정당후보자 정보를 싹 훑어보면서 궁금한 걸 물어보곤 한다.


아이에게 선거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 걸까. 문득 나 어렸을 적 대선 투표 때가 떠오른다. 우리 집 근처에 김대중 대통령 후보자가 온다고 한 때 동네가 들썩였던 기억도 나고, 고향이 서로 달랐던 엄마, 아빠는 정치 성향도 달라서 가끔 티격태격했던 기억도 난다. 정치 문제 가지고 싸우는 건 지금도 여전하지만.




실은 아이가 총선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 이유는 단연코 학교를 하루 안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일절이 있어 3월 개학 전에 하루 쉴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겨울방학 끝이라 체감상 크게 휴일이라는 느낌이 들기 어려웠다. 개학하고 나서 3월 내내 연휴날 하루 없이 등교하면서 열심히 학교에 적응했고, 때때로 잊어먹을 만하면 등교거부를 해서 내 애간장을 녹였다.


3월만 지나가라, 3월만 잘 견디면 1년 금방 간다를 되뇌며 고비가 지나가길 기도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으로 하루 조퇴한 것 빼고는 결석 없이 한 달을 견디어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3월도 끝이 났다.



벚꽃이 개화하고 4월이 되자 아이를 꼬실만한 강력한 무기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국회의원 선거!



여름 방학은 너무 오래 남았고, 어린이날이며 석가탄신일도 다 5월이라 아직 멀었다. 학기 초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인 아이를 달랠만한 구실이 절실히 필요했다. 공휴일이 없는 3월에는 내내 오늘 하루만 더 가면 주말이잖아, 이틀만 참으면 쉴 수 있어 파이팅이라는 말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애써 위로하며 등교시켰다.



저학년 때는 학교 가기 싫어하면 큰 맘먹고 체험학습을 써가면서 쉴 수 있게 해 줬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다. 따로 여행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체험학습을 내고 집에 있으면 참으로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박물관이든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는 있었지만 해외나 멀리 떠난 여행이 아닌 이상 평일의 한산함은 왠지 모르게 따분함과 재미없음으로 다가왔다.



어차피 5월 초에 교외체험학습을 며칠 쓰고 여행 갈 계획이 있기 때문에 어찌 됐든 그전 두 달만은 등교를 매일 시켜야 한다. 학교란 마음먹고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는 곳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사회성 부족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기가 세상 가장 어렵고 큰 과제라서 힘든 건 알지만 언제까지고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번 주는 수요일, 험프데이가 선거일이다 보니 아이를 살살 달래기 아주 좋은 것이다!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오자마자 또 학교 가기 싫다고 징징대려는 아이를 향해 이틀만 참으면 선거날이야, 그날 빨간 날이라서 쉴 수 있다는 말로 설득했다. 생각보다 이 전략은 잘 먹혔다. 화요일은 또 다른 날보다 늦게 끝나는 날이라 고비인데 내일 쉬니까 힘내자고 했더니 어느 정도 납득을 했는지 군말 없이 학교에 갔다. 휴우 다행이다.


공휴일 하루 없는 4월에 선거날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것도 날짜도 딱 적당한 수요일이라 더욱 다행이다. 선거일이 끝나고 나면 5월 전까지 또 얼마간의 고비가 남아있지만 운동회, 소풍 등 행사가 많아서 그럭저럭 넘어갈 것 같다.


어쩌다 학교에 보낸다는 가장 기본적인 일조차 이렇게나 어려운 육아 과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발달문제든 아니면 심리정서상의 이유 든 간에 중고생들 중에서도 등교거부를 해서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많다는걸 실감한다. 듣는 풍월에 따르면, 전에는 전교에서 한 두 명이었다면 이제는 반에서 한 두 명으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인 듯하다. 고등학생이 된 느린 아이가 꾸준히 등교거부를 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블로그 이웃분 글을 보니 남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 초등학교 때만 이러는 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내 아이도 중고등학교까지 쭈욱 변함없이, 한결같이 학교 가기 싫어하면 어쩌지 미리 걱정이 된다.


오지 않은 미래 일은 닥치면 걱정하기로 하고.. 여하튼 이번 주는 나라에서 정해준 공휴일, 총선 덕분에 등교 거부 하는 아이 하루 쉬어 갈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투표하고 따뜻한 날씨 만끽하면서 편한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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