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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18. 2024

넌 어디에 복이 붙어서 내 아들이랑 사니?

시어머니 금기어 사전

외동아들을 하나 두고 살다 보니 나중에 며느리를 맞이하게 될 먼 미래도 꿈꿔본다. 아직 아이는 제앞가림도 못하는 철부지 초등학생에 발달까지 느려서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고 있긴 하지만, 미래를 꿈꿔볼 자격조차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일도 하고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는 아이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하는데 도저히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건 사실이다. 사회성 자체가 또래보다 낮은데, 그보다 훨씬 더 한수 위의 사회성과 눈치, 분위기 파악, 타고난 센스 등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요구되는 연애라는 사업을 아이가 대체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걱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언젠가 나도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은 미미하나마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떤 시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한참 먼 미래이기도 하고 결국 시어머니가 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굉장히 좋은 경우는 그다지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서로 싸우고 갈등을 일으키는 집도 많이 없지만, 겉으로는 좋아 보이고 별 문제없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건 한쪽에서 많이 참고 있거나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의 경우도 웬만하면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성향이 매우 강해서, 시어머니께 설령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대놓고 말 못 하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아예 혼자 끙끙 싸매지는 못하고 대신 남편에게 토해낼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친정엄마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려고, 며느리를 배려하려고 굉장히 세심하게 노력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것조차 내 엄마라는 주관적인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며느리 입장에서는 또 다른 항변이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도 꽤 인정하는 걸로 봐서는 상식적인 선에서 좋은 시어머니는 맞는 듯하다.


그런데 그 좋은 시어머니라는 역할을 지켜내기 위해서 엄마는 속으로 끙끙 앓고 말 못 하는 게 많다. 뭔가 불만도 있고 대놓고 말하고 싶은 의견도 있으신 것 같은데 그냥 참는다. 어떤 형태의 말이든 결국 시어머니 입에서 나오는 건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될 수 있다는, 당신의 큰며느리살이를 통해 느낀 교훈 때문인지 절대 싫은 소리를 내뱉지 못하신다.


옆에서 보는 나는 좀 답답할 때도 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이야기해 볼 수도 있고, 싫은 소리라 하더라도 속으로 불만을 품기보다 오해를 풀고 서로 털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어머니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는 좋은 며느리가 되는 것만큼이나 굉장히 어려운 삶의 과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깨달은 바 한 가지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자는 것.

대신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내뱉지 말아야 할 말을 조심하자는 것이다.


며느리로서는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이며, 사랑하는 남편을 평생 키워주신 엄마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듣게 된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게 뭐가 됐든 며느리 앞에서는 말을 참 조심해야 한다.


지인의 시어머니께서 한 번은 이런 말을 대놓고 하셨다 한다.

가족 모임에서 한창 분위기가 좋아서 무르익고 있었고, 모두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누던 차였다.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지인의 손을 붙잡고 어깨를 쓰다듬으시면서,

"너는 대체 어디에 복이 붙었길래 우리 아들 같은 남자랑 사니? 나는 네가 정말 부럽다 부러워.."라고 진심 어린 눈빛으로 호소하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며느리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할 말을 잃었고, 남편도 엄마의 말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어머니의 말씀은 뭐랄까, 너무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아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칭찬도 담겨 있는 것 같고, 당신의 남편을 향한 불만도, 그간 힘들었던 인생 여정에 비해 본인 아들 덕에 호강하는 며느리에 대한 질투도 있는 것 같고, 결정적으로 내 아들에 비해서 며느리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뉘앙스도 은근히 느껴진다.


급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지인은 이렇다 할 반응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상황은 마무리되었는데, 그 말이 두고두고 떠오르고 상처가 된 것 같다 했다.



삼자로써 전해 들은 나도 상당히 충격적인데, 본인은 어땠을까 싶다.

무엇보다 자존심도 좀 상한 것 같았다.

남의 집 사정이라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그렇지만, 내 지인이 남편에 비해 부족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아니, 어찌 보면 학벌도 더 뛰어나고 인정받을만한 학위도 있다. 결혼하고 육아하느라 경력을 이어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전문직이라서 언제든 마음먹으면 다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런데도 그 시어머니는 뭐가 그렇게 며느리가 당신 아들에 비해서 부족해 보였을까.

너는 복이 대체 어디에 붙었냐는 그 물음은, 모든 면에서 내 아들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데 '복' 하나 잘 타고나서 잘난 남편 만나 편히 살고 있지 않냐는 뜻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내가 봐도 지인의 남편은 성품도 온화하고, 성실하고, 능력도 좋고 무엇보다 아내를 존중해 줄 줄 알고 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남편 쪽에서만 잘해준다고 해서 그런 관계가 성립하는 게 아니다. 아내도 남편이 위해주는 만큼 많이 맞춰주고 알게 모르게 가정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당신의 능력 있는 아들만 희생하고, 고생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설사 아들이 너무 아까운 것 같은 마음이 든다고 해도 속으로만 품어야 하는 생각이다. 아니면 며느리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하든지.


먼 훗날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면 며느리에게 꼭 하지 말아야 할 금기어 사전을 만들어서 마음속에 품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잘해주고 잘 챙겨줘도 꼭 좋은 시어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아무리 잘해줘도 일방적으로 퍼주는 관계는 없듯, 내가 잘해주면 잘해준 만큼 바라게 되는 게 인간의 속성이고 욕구다. 나도 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냥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말, 며느리에게 두고두고 상처될 말을 자제하고 참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친구는 시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내 아들이 키까지 컸으면 너한테 장가 안 보냈다."


그 시어머니는 키를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당신의 아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흠.. 네네 키까지 큰 훈남이었다면 저 말고 미스코리아랑 결혼했겠죠.."라고 속으로 대답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르니까 미리미리 금기어사전을 하나씩 채워가야겠다.

이건 며느리 입장에서 일 때 더욱 강하게 와닿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많이 기억해둬야 한다. 나중에 세월이 흐르면 또 며느리 때 기억은 다 흐릿해지고 시어머니 역할에만 매몰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말만 조심해도 인간관계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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