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Jul 02. 2024

엄마도 인스타랑 유튜브 지워

스마트폰과의 전쟁은 언제까지

핸드폰이 갖고 싶다고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괴롭히기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결국 초6이나 되면 사주어야겠다던,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던 내 원대한 목표는 고이 접어두 어야만 했다. 90퍼센트 이상의 반 아이들이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못 견디게 부러운듯했다. 자기도 핸드폰이 생기면 엄마, 아빠 이름은 어떻게 저장할 거고 친구들은 별명을 어떤 식으로 정해서 저장할 건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였다.


나도 슬슬 아이랑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좀 취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는 했다. 매일 아이 스케줄에 밀착해서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지쳤고, 가끔 동네 안에서도 아이랑 길이 어긋나면 서로를 한참 찾아 헤매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또 아무래도 다시 일을 하게 되면 아이랑 연락이 되는 수단이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이래 저래 연락 수단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스마트폰의 앱 다운이라는 기능이 전혀 없는, 와이파이 연결 자체가 차단되어 있는 벽돌폰을 사주게 되었다. 정말로 생긴 건 최신형 갤럭시 스마트폰인데 문자, 전화 이외에는 모든 게 차단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뭐 스마트폰 중독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아이 손에 쥐어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자 주고받으면서 장난치고 설정에 들어가 이 기능 저 기능 만져보며 노는 시간이 늘기는 했지만, 앱 사용은 전혀 할 수 없으니 뭔가 중독이 될만한 대상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처음에는 자기만의 핸드폰이 생겼다고 말도 못 하게 행복해하더니,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도 가지 않아서 본인 핸드폰이 친구들것처럼 데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이는 절망했다. 친구들 핸드폰도 보면 대부분 부모님들이 사용제한을 해놔서 모든 앱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가끔 사용제한이 풀리거나 와이파이존에 가면 잠깐이라도 앱을 이용할 수 있는 친구들의 스마트폰을 보더니 크게 자극을 받은 듯했다.


아이의 핸드폰은 와이파이 지역에 가든 말든 그냥 모든 게 다 차단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본인 폰은 생긴 것만 멀쩡한 고물폰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얼마가지 않아 울고 불고 떼를 쓰면서 자기도 데이터 되는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난리가 났다. 이 사단이 날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알고 있었다.


뭐 하나를 해주면, 또 그다음걸 바라고, 금방 흥미를 잃고 또 다른 걸 요구하는 아이의 습성이라 해야 할까, adhd 특유의 증상으로부터 기인한 만성 도파민 결핍은 아이로 하여금 끊임없는 자극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이 증상에 대한 최대 피해자는 부모인 나고.


어렸을 때처럼 차라리 떼쓰고 화내고 징징대면 그나마 덜하겠는데 요새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갖고 싶은걸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떼를 쓴다고 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심리 불안을 보여주는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이런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루종일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뭔가를 찾고 다니길래 뭐 하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어딘가에 진짜 스마트폰을 사서 숨겨놨을 것 같아서 찾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순간 겁이 났다. 애가 정말 왜 이러지. 스마트폰이 갖고 싶어서 미쳐버린 건가. 안 그래도 정신과 약 복용 중인데 점점 더 이상해져서 돌아버린 거 아닌가.


애를 붙잡고 대체 왜 그러느냐고, 엄마가 왜 스마트폰을 사서 몰래 숨겨뒀겠느냐고 순간 불안함에 휩싸인 채 물어보았다. 아이는 그냥 그랬을 것만 같다고, 자꾸 뇌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자기도 막을 수가 없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너무 갖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엄마에게 또 혼날까 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눈빛으로 내 눈치를 슬슬 보며 어렵사리 대답했다.


어쩌다 애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는 나대로 미디어 차단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남들 다 스마트폰 사줄 때 나는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텼는데.


보통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붙잡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극적인 영상과 쇼츠, 게임에 노출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주의집중력 결핍과 산만한 증상을 내 아이는 그런 노출 없이도 이미 지니고 태어나버렸다. 그게 아이의 가장 취약한 약점이다.


그나마 약물과 센터 치료로 조절하고 있지만 여전히 순탄치 않은 부분도 많다. 정상 발달 아이들이야 하루에 시간 정해놓고 한두 시간 정도 스마트폰 보는 것쯤이야 ADHD로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내 아이에게 미치는 악영향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래서 더욱 내 아이는 미디어 노출에, 스마트 기기 사용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간의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이렇게까지 스마트폰을 간절히 원하는 지경에 이르러 이상 행동까지 보이고 있다. 그 날밤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고민스러워서 쉬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부모님들이 스마트기기 사용을 어떤 식으로 조절하고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그러던 중 중학생인 ADHD 자녀를 키우는 분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중2이지만 여전히 데이터도 와이파이 사용이 차단된 벽돌폰을 사용 중이며, 집에서 와이파이도 아예 끊어놨고 패드나 노트북도 핫스폿으로 필요할 때만 연결해준다고 한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했는데, 부모가 마음먹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차단하지 않으면 ADHD 아이는 더 쉽게 중독될 가능성이 높고 충동성과 산만함도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에 이렇게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 스마트폰에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학습은 등한시하게 되는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집에 와이파이까지 끊는 건 좀 과한 처사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우리가 당연시 여기던 것들이 아이의 성장에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서 언제든 와이파이가 접근 가능해서 스마트기기를 자유자래로 쓸 수 있는 환경이, 과연 아이의 성장에 더욱이 언어 발달과 사회성이 느린 아이에게 과연 유익했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도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단호함도 필요하다. 애가 아무리 울고 힘들어하고 너무 원하고 갖고 싶어서 병이 난다 하더라도, 아직 발달치료에 매달리고 있는 아이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줄 수는 없다. 더 이상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하교한 아이를 향해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설득을 시도했다. 엄마는 너에게 아무 때나 앱을 열어보고 쓸 수 있게 허락할 수가 없다, 아직 어린 너에게 얼마나 그것들이 유해한 지에 대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최대한 쉽게 설명해 보려고 애를 썼다.


돌아온 아이의 대답은?

"그럼 엄마, 아빠도 유튜브도 하지 말고 인스타도 하지 마."


"엄마가 언제 유튜브랑 인스타를 했어? 너랑 있을 땐 거의 안 하려고 노력해."


그래도 조금씩은 하지 않느냐며, 특히 아빠는 주말에 맨날 유튜브랑 아프리카 tv 자기 몰래 보는 거 다 안다고 대답했다. 엄마, 아빠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자기도 이 현실을 받아들여보겠노라고 나름 논리 아닌 논리를 나에게 들이댔다.


"알았어, 좋아 그럼 엄마도 쓸데없는 SNS는 다 지울게. 대신 일상에서 꼭 필요한 은행업무나 검색앱 같은 건 지우기 힘드니까 네가 이해해 주고. 유튜브, 인스타 다 지울게."


아이는 지금 자기 눈앞에서 다 지우란다. 아이를 옆에 세워두고 다 지워버렸다. 혹시 브런치 앱도 지우라고 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무슨 앱인지 모르는지 다행히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아빠도 저녁에 집에 오면 유튜브랑 다 지우라고 시키겠다고 거듭 약속을 했다.


그제야 조금 자기에게 공평하다고 느껴졌는지 마음에 안정을 찾는듯한 눈치였다. 본인도 앱 사용에 제한이 있으니 엄마, 아빠도 쓰지 말라는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최근 들어 나도 모르게 쇼츠 영상이나 릴스를 시도 때도 없이 찾아보기는 했다. 운동이나 필요한 정보에 관한 유익한 유튜브 영상을 볼 때는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쇼츠들은 꼭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도 모르게 자꾸 보게 되는 것들이다.


아이 성화에 인스타와 유튜브를 지우긴 했지만 앱 삭제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아주 조금 떨리기는 했다. 내가 과연 이것들 없이 살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 계정만 있지 업데이트는 몇 달에 한 번할 뿐이고 남의 피드 보는 게 거의 주된 목적이다. 모르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애 덕분에 디지털 디톡스 한 번 해보지 뭐.


처음 몇 시간은 답답해 죽을 것 같더니 만 하루가 지나니, 내 폰에 인스타와 유튜브가 없어도 당장 뭐 큰일이 나는 건 아니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 만하다. 다만 인스타그램은 친구나 지인들 근황 확인용으로 애용하던 참이어서 많이 아쉽긴 한데, 그것도 차츰 적응되지 않을까.


중독성 강한 SNS를 지우고 나니 나에게 남은 건 오직 브런치앱뿐이다. 앞으로 한동안은 브런치 앱을 전보다 더 자주, 습관적으로 들어올 것 같다. 그래도 자극적인 영상이 아니라 브런치는 글이 많으니까 훨씬 무해하지 않은가. 애 덕분에 이 참에 도파민 조절도 하게 돼서 차암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아빠가 있는 게 낫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