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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03. 2024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지 이 바보야

ADHD 아이 키우기

애 자존감을 길러보겠다고 수많은 육아서와 관련 서적을 읽고 기록하고 실천하려고 다분히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참 무색하게도 요즘 아이의 행동양상을 보면 누가 봐도 자존감이 매우 낮은 아이로 보여서 참 속상하다. 특히나 ADHD를 가진 아이는 매사에 실수가 잦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않는 등 자라나는 아이의 자존감을 급속도로 저하시킬만한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신경썼다. 아이의 자존감이 다치지 않게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공부했다.

자존감에 관한 책이라면 도서관 서점 어딜 가도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놓고 제목에 자존감을 필두로 내세운 책들도 즐비했다.



행복한 아이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긍정적인 자세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아이다.
조건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긍정적인 자기 확신을 지닌 아이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그 힘으로 남도 사랑한다.

<초등자존감수업>


자존감은 어디 학원에 가서 사교육으로 키워줄 수 있는것도 아니고 가정에서 부모의 평소 말과 행동으로 다듬어질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말을 습관하하고 감정을 읽어주고 아이의 말을 경청해주는 등 부모가 기본적으로 이런 태도를 갖춰야한다.


책에서 나온 글과 내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커서 내가 이런 고급스러운 태도를 갖춘 교양있는 부모가 과연 될 수 있을까 매번 자문하게 되었고 나 스스로를 많이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읽어보려고 했다. 당장 행동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체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내가 요즘 아이의 행동에서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것은 싫으면 싫다고 말을 못하는 데에 있다. 주변에 친구 동생들과도 곧잘 놀 기회가 생겼다. 7살에서 8살 동생들과 노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자면 고구마 만 개 먹은것처럼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형인데도, 오빠인데도 옳은 소리 한 번 못하고 동생들의 철없는 요구를 다 받아주고 내내 끌려다니고 있다. 동네에 두살 어린 남자 아이 또한 밝고 명랑하지만 충동성이 좀 강한 친구다. 잘 놀다가도 괜히 주변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아직 어리기도 하고 공격성이 강하지는 않아서 제지해야할까 말아야할까 그야말로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다. 그 동생이 내 아이에게 와서 형아 놀자 하면서 먼저 친근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항상 친구가 궁한 아이는 반가워하며 동생에게 응하곤 한다.


그런데 놀다보면 동생이 좀 선이 넘는듯한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자기보다 두 살이나 많은 형인데도 내 아이가 그만큼 만만해보이는지 엉덩이를 때리거나 가위바위보 지면 머리 쥐어박기를 하자고 해서 때린다거나 밀치고 당기는 등의 장난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게 중간에 내가 개입해서 저지하기에는 어리기 때문에 그 강도가 아이를 위협할만한 수준도 아니고 아이도 크게 기분나빠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보다가 정 안될것 같으면 나서서 형아한테 그렇게 하는거 아니야,하고 말한적은 있다. 그러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니까 더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유독 그 동생에게만 당하는것은 아니고 아이는 다른 동생들에게도 비슷한 패턴으로 좀 당하는듯한 느낌이었다.


동생들한테도 이런 식이면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한테는 얼마나 얕잡아 보일까 싶어서 마음이 아파왔다.

자기 감정을 편하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억울함이 있어도 그냥 참기만 하는걸까. 그래서 학교에 가기 싫은걸까.


밤에 자려고 불 끄고 누웠을 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그 동생이 너 건들고 귀찮게 했을 때 왜 싫다고 말 안했어? 기분 나쁘면 하지 말라고, 아프다고 말하면 돼."


그냥 좋게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건데 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터트린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싫다고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 말이 입에서 안나와. 안 나오는걸 어떡해.."


엉엉 우는 아이에게 더 뭐라고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안아주었다. 그래, 그게 그렇게 힘들면 억지로 할 수도 없는거고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보자. 기다리자. 별 수 있니.


상황해결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건지, 언어가 늦게 터져서 화용능력이 서툴러서 그런건지, 사회적 눈치가 떨어져서 그런건지, 약불 부작용으로 불안도가 높아서 그런건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 이도저도 아니면 원래 애 성격이 날 닮아 이렇게 물러터진건지도.


싫으면 싫다고, 자기 표현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 마음 속에는 얼마나 많은 억울함이 쌓여있을까. 내가 없는 공간에서, 학교 쉬는 시간에도 수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날텐데 그 순간 순간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또래 애들한테 치이기만 하다가 오는 아이를 생각하면 속이 답답해서 돌아버릴 것 같다.


자존감 키워주겠다고 책에서 시키는대로 노력해봤자 다 허사다. 아무 소용 없다. 싫다는 자기 표현 하나 제대로 못하는데 그 가운데에 무슨 자존감이 어떻게 지켜지고 자라나겠는가.


그만 하라고, 하지 말라고, 기분 나쁘다고, 네가 뭔데 나한테 이렇게 대하느냐고, 계속 이런 식이면 너랑 안 논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자존감, 혹은 자신감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너와 내가 같이 노력해보면 그럴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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