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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08. 2024

모든 게 다 장마 탓일거야

부부싸움의 원인은

매년 이 맘 때쯤이면 장마시즌인 게 당연한데 올해는 유독 길게 느껴진다. 아니면 매년 길다면 긴 장마를 겪고서도 맞이할 때마다 또 새롭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물을 재배해야 하는 농사꾼에게는 장마가 필요한 계절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장마가 하나도 반갑지가 않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가정 일건조기라는 축복의 시대에 사는 덕분에 웬만한 빨랫감은 건조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괜찮은데, 문제는 외출복이다. 수건이나 속옷같이 건조기에 돌려도 옷감 변형이 별 걱정 안 되는 건 다 건조기에 돌려버리면 끝이다. 그런데 외출복은 건조기에 넣지 않고 따로 건조대에 널어서 말리는 편이다. 특히 여름옷은 땀이 배어 매일 빨아줘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널고 말리는 과정이 요구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조기 없이 살던 때에는 모든 빨래를 널고 말리고 했었는데 이제는 외출복 몇 개만 하면 되는데도 그것조차 귀찮아진 걸 보면 사람은 참 환경에 무섭게 적응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장마철에는 빨래가 마르질 않으니 따로 제습기를 건조대 앞에 두고 돌려준다. 물보관함이 혹시 넘칠까 봐 제습기도 엄청 오래 돌리지는 못하고 서너 시간마다 끄고 물을 비우고 또다시 돌려주는 작업이 반복된다. 제습기를 열심히 돌려서 말렸는데도 왠지 옷에서는 기분 나쁜 쉰내가 나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 그지없다.


가족들 먹여야 하니 부엌에 서서 뭐라도 좀 하고 있으면 금세 땀이 난다. 태생적으로 체질이 더위를 타지 않고 땀도 잘 안나는 체질인데도 내 몸에서 땀이 뻘뻘 흐르는 걸 보면 확실히 많이 덥고 습하다는 증거다.


폭염주의보가 계속되는 무더운 여름인데 남편은 또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래도 하루종일 에어컨이 돌아가는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냉방병인 듯싶다. 남들 더운 데서 일하는데 시원한 실내에서 근무하는 것도 축복 아니냐 싶을 수 있지만, 여름만 되면 한 번씩 이렇게 몸살이 심하게 나는 걸 보면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일하는 것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냉방병에서 비롯된 몸살이 약을 계속 먹어도 일주일이 지나도 낫지를 않으니 남편은 매일같이 골골대고 있었다. 덕분에 그나마도 참여율이 저조한 살림, 육아는 더더욱 내 몫이 된다. 일도 겨우 해내고 온 남편에게 뭐 이것저것 작은 거라도 부탁하려면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몸은 좀 괜찮냐, 어떠냐고 물어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일주일이 넘어가니 나도 슬슬 짜증이 났다. 시어머님은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가 와서 짠하다고 옆에서 좀 잘 챙겨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겉으로는 네네 하면서도, 과히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내 부족한 인성 탓인가 싶었다.


결국 토요일 오전에 온 가족이 다 폭발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는 내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나가기 싫다고 했다. 주말이면 좀 늦잠을 잘법한데도 아침 6시부터 일어나서 나를 괴롭히는 아이의 비위를 맞추느라 나도 신경이 날 서 있었다. 아침부터 에어컨을 틀기에는 좀 이른 것 같아 선풍기만 돌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래도 많이 습하고 더웠다.


애는 또 이번 주말에는 뭐 재밌는 일 없냐고, 뭐 하고 놀 거냐고 재촉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좋게 받아줬다. 그래, 뭐 하고 싶니, 뭐해볼까,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자라며 이야기하는데 뭐 딱히 대단한 계획도 없고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싶다는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아이도 딱히 떠오르지는 않으면서도 뭔가 재밌는 건 하고 싶다는 내색을 계속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말 나들이 계획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열 번 중 한 번은 남편이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나 내가 계획해야만 했다. 지역 맘카페나 육아 정보를 자주 검색하는 게 주로 내가 하는 일이다 보니 자연히 그런 외출계획도 내가 세우게 되는 것이었다. 가끔 지치기도 했지만 요구하면 그래도 시키는 대로 따라와 주는 남편이었기에 그거라도 어디냐 싶었다.


이것도 몇 년째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지쳐서 주말이 돼도 새로운 계획은 잘 세우지 않는다. 게다가 다음 주에는 리조트 여행 숙박이 예정돼있기도 하고 해서 이번주에는 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주말만 바라보고 일주일 동안 학교에 열심히 다닌 아이는 더욱더 뭔가 재밌는 주말을 보내기를 바랐고, 나는 그런 아이의 기대심이 부담스러웠다. 한편 속으로는 이 정도 나이면 이제 주말에도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도 하고 부모와는 좀 떨어지고 싶어 하기도 하는데, 사회성이 없으니 오로지 부모에게 기대는 아이가 불쌍하기도 하면서 솔직히 짜증스럽기도 했다. 언제까지 친구 노릇을 자처하며 아이와 어울려줘야 할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나도 할 말이 없어서 아이를 좀 받아주다가 남편에게 토스를 했다. 아빠랑 한 번 이야기해 봐, 하면서. 애가 뭐 자꾸 하자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하고 할 일만 하는 남편이 좀 얄밉기도 해서 떠넘긴 것이다. 애가 뭐 재밌는 거 하고 싶다는데 주말에 뭐 할까,라는 내 질문에 별안간 남편은 짜증을 버럭 냈다. 나 지금 출근준비하는 거 안 보이냐고, 이 상황에서 무슨 놀 연구를 하겠냐고, 그만 좀 하라고.


아이도 나도 순간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고 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몸이 정말 많이 힘든가 보다 싶어서 더 이상 받아치지 않고 좋게 넘어갔다. 그런데 나중에 뒤돌아 생각하니 자꾸 화가 나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싶기도 하고.


후에 아이에게 전화해서 아까 아빠가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걸 보고 나서 좀 마음이 누그러지기는 했다. 나한테 버럭 한 건 괜찮지만 아이에게 그러는 건 더 참기 힘드니까. 애한테라도 사과하는 걸 보니 마음이 풀어졌다.


하지만 주말 내내 이런 티격태격이 반복되었다.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인데, 평소에도 장난처럼 주고받던 말들인데도 웬일인지 더 정색을 하고 화를 내는 남편의 모습을 마주해야만 했다. 나도 뭐 대단한 대인배는 못 되기에 소심하게 받아치기도 하고 같이 정색하기도 했다. 대놓고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쌓아두기도 하고 기분 나쁜 티도 냈다.


어디 식당에서 외식을 할지 정할 때도, 막상 식당에 가서 메뉴를 정할 때에도 메인 메뉴에 곁들일 음료를 정할 때에도, 왠지 모르게 날 선듯한 남편의 태도가 문득문득 거슬렸다. 그 순간마다 내 표정이 일그러졌을지는 모르겠으나 웬만하면 그냥 다 참고 넘어갔다. 그의 입장에서는 또 다르게 받아들였을는지는 모르겠다.


대놓고 싸울 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꾸 이렇게 부딪히는 이유는 뭘까. 곰곰 생각해 보다가 어설픈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아무래도 장마 탓이야. 날씨가 너무 습하고 덥고 하다 보니 평소보다 몸도 안 좋은데 더 예민해지게 되고 그 짜증이 하루종일 붙어있어야 하는 주말, 가족을 향해 터진 거야. 그걸 넓은 아량으로 온전히 받아주지는 못했기에 나도 뭐 잘한 건 없다. 부부끼리 날 선 감정을 아이에게 풀 때도 있었다. 참 찌질하고 못났다.


결국 서로 얼굴 붉히고 언성을 높이며 싸웠고 싸움의 불씨가 된 결정적 원인은 어이없게도 누군가의 긴 한숨소리 때문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오갔고 며칠간 쌓아뒀던 별 일 아닌 일들까지 끄집어와서 반전에 반전을 노리며, 여태 누가 더 참아왔는지 누가 더 서로를 견뎌내기 위해 노력했는지 치열하게 서로를 비방하면서 설전이 오갔다. 승자는 없고 패자도 없고 남는 게 있다면 감정 소모뿐인 부부싸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가 뭘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가 먼저 잘못을 시작한 걸까. 시시비비가 정확히 가려지기는 하는 건가.


이 모든 게 이 습하고 덥고 견디기 힘든 지랄 맞은 날씨 탓일 거야. 인내심 테스트 하는듯한 푹푹 찌고 덥고 습한 이 공기, 이 장마 날씨 때문임이 분명해. 아니, 꼭 장마 때문이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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