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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04. 2024

남편이 시청역 참사로 힘들어해요

유독 왜 이 사건에 집착할까

이보다 더 황망하고 허탈한 죽음이 있을까.

사람만 지나가도록 되어있는 인도에 서있다가, 순식간에 피할 겨를도 없이 들이닥치는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발생했다. 하루가 다르게 별별 사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세상이라지만, 이번 참사는 너무나 어이없고 허탈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사고 발생 다음날 인터넷에는 이 사건에 대한 기사들로 떠들썩했다. 한두 기사를 클릭해서 읽어보고, 너무 끔찍해서 그만 봐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또 현장 cctv가 나온 영상까지 보게 되었다. 1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발생해 버린 처참한 상황에 발생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서 애써 외면했다.


사고는 안타깝고 마음 아팠지만 사실 내가 사는 지역과 가까운 곳도 아니고 주변 지인들과 관련되어 있지도 않아서 미디어에서 접하는 내용이 전부다. 이 사고로 인해 아직 유족들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을 것 같은 아리셀 화재 사건에 대한 기사는 쏙 들어간 것 같아서 조금 처연하기도 했다. 아리셀 화재는 아무래도 피해사망자가 외국인 위주라서 길게 조명받지 못하는 걸까. 그 사람들이나 이 사람들이나 다 같은 사람 목숨, 한 순간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생명이다.


두세 번의 클릭 후에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내 하루에 집중했다. 정말 슬프고 화도 나는 사고이긴 하지만 유족도 지인도 아니기에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저 신문과 기사에서 보여주는 사망자 숫자와 통계 어쩌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마음은 아프지만 내 눈에서 눈물까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안타깝네, 이런 사고 좀 안 나게 할 수 없나, 하는 생각만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런데 남편은 좀 달랐다. 과하다 싶을 만큼 여러 번 이 사고에 대해서 나를 붙잡고 이야기했다. 너무 안타깝다면서, 사고당한 사람들 다 어린 자식들 딸린 3,40대 가장들이라는데 가족들은 어떻겠냐고, 사고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한다면서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 한 두 번은 같이 공감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세 번, 네 번째가 넘어가니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잊을만하면 자주 발생하는 사망 사건은 늘 있어왔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사고가 어디 이번뿐이랴. 채상병 사건도, 훈련병 사망 사고도, 이태원 참사도, 각종 교통사고, 화재 사고들도 여러 명의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 사건을 같이 볼 때마다 남편도 같이 안타까워 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좀 달랐다.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루 종일 표정이 어두웠고 계속 한숨을 쉬는 거였다.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어서 처음에는 맞장구 쳐주다가 나중에는 눈치까지 보게 될 정도였다. 많이 우울해 보였다.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남편은 이번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직원들도 군대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젊은 군인도 생명을 잃은 건 다 똑같지만 남편은 그 피해자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나이도 다르고 직장도 다르고 사는 지역도 다르고 어쩌면 동일한 건 한국 사람이라는 것뿐이지 평생 가도 마주칠 일 없는 사람들 일지 모른다. 유독 이 사고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도 이와 같은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한창 어린 자식들 키우는 40대 초반의 나잇대라는 점,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니 매일 여러 번 신호등을 건넌다는 점, 동료들과 승진 회식 자리를 가지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는 점 등 본인과 여러 가지 면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다른 사건들보다 더 깊이 동일시하고 그 아픔을 공감하는 것 같았다.


"그 자식들 아직 어리다는데 어떡하냐.."

"여러 명이 같은 회사 사람들이었다는데 참.."


했던 말들을 의미 없이 또 반복하는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가 재수 없으면 본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책임질 처자식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혹시 나에게도 그런 참변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운 걸까.


시청역 참사에 대한 기사가 새로 업데이트될 때마다 계속 찾아보고 확인하고 또 공분하고 있다. 궁금함을 못 참겠는지 뉴스 영상까지 자꾸 찾아보면서도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나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남편이 느끼는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진실로 공감해주지 못해서 미안함을 느낄 지경이다.


사실 나는 다른 그 어떤 사망 사고보다, 세 살 난 자녀가 자폐스펙트럼 판정을 받고 자살을 선택한 젊은 엄마의 기사를 봤을 때가 더 힘들고 괴로웠다. 댓글에 죽을 거면 혼자 죽지 자식의 목숨을 앗아간 비정한 엄마라는 글을 봤을 때 화가 났다. 어린아이가 너무 불쌍했지만 그 젊은 엄마의 선택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갔는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는 전제를 저버리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 구역질이 나왔다. 생각하기 싫었지만 자꾸 그 자살 사건이 머릿속에 남아 떠나지 않아서 한동안 힘들었다. 그 무엇보다 그 사건의 주인공이 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마 남편도 그래서 더 괴로운가 보다. 그 사고의 주인공이 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도 그와 비슷하게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새도 없이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번 사고로 정말 터무니없이 세상을 등지게 된 피해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창 열심히 일할 나이였고,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힘든가 보다. 심리적 트라우마가 되어 너무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이 공분하는 이유 중 하나에는 처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미안스럽기도 하다.


지금 어느 누구보다 견디기 힘들고 슬플 사람은 유족들일 것이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게 분명하다.


이번 참사가 또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신중한 태도로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제대로 된 원인이 규명되어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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