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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16. 2024

친구 없는 아이에게 핸드폰의 쓸모

의외의 핸드폰 활용법을 소개합니다

여느 때처럼 놀이터를 지나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에 또 아이 친구들을 마주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와 같이 노는 친구들은 아닌데, 같은 반 아이도 있고 한 때 잠깐 같이 놀았던 아이들도 있어서 친구라고 지칭한 것이다. 전 같으면 애들이랑 놀고 싶지만 다가가지를 못하니 나한테라도 매달려서 애들이랑 놀게 해달라고, 대신 말해달라고 부탁하거나 그도 어려우면 그 아이들 곁을 맴돌면서 같이 놀고 싶은 티를 소심하게 내던 아이였다.


3학년이 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아예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어울리기에 뭔가 불편하고, 잘 놀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이 아이에게 있어 오르지 못할 나무다.  그런 친구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외향적이고 자전거를 끌고 놀이터에 나와 다 같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신나게 논다. 일명 인싸 느낌이 나는 활달하고 바깥 활동 좋아하는 남자 친구들이다. 아이는 이런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은 그득한데, 잘 어울리지를 못한다. 그 아이들이 끼어주지 않는 건지, 아이가 잘 끼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둘 다 조금씩 해당될 수 있다.


너 다섯 명의 남자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데 그 놀이터를 꼭 지나쳐야만 우리 집이 나오니까 피해서 돌아갈 수도 없다. 꼭 그 아이들을 거쳐 지나가야만 한다. 그 친구들이 불편하거나 알은체 하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아이는 멀리서 그 친구들이 보이자마자 순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친구들을 지나갈 때면 몇 가지 반응을 보이는데 어떨 때는 아이가 투명인간인 양 아예 아는 체도 안 하고 지나칠 때도 있고, 가끔은 이름 부르면서 반갑게 인사해 줄 때도 있다. 같은 반이거나 같은 유치원 출신 아이들이라 얼굴을 모를 리는 없다. 어떤 상황이든 아이에게 먼저 놀자고 제안하는 적은 없다.


예전에 멋 모를 때에는 같이 놀자 하면서 영광스럽게 제안받기도 한 적이 있지만, 몇 번 어울리고 보니 뭔가 재미도 없고 맞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그쪽에서도 먼저 제안해 오는 법은 없다.


안타까운 건 아이도 이제 스스로 그 친구들과는 어울리기 어렵다는 걸 인지했다는 것이다. 외동이라 늘 외로워하고 누군가와 재미나게 노는 걸 갈구하는 녀석이라, 그 아이들이 같이 놀자고 한 마디만 한다면 두 말 않고 응할 것이다. 애들 눈치를 보면서 뭐 하고 노는지 부러운 눈빛으로 열심히 관찰하면서 그 놀이터를 지나쳐 오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핸드폰을 사주고 나서는 매일이 전쟁이다. 어플 사용도 와이파이도 차단된 벽돌폰인데도 뭐가 그렇게 게 볼게 많은지 매일 핸드폰을 만지면서 이 기능 저 기능 갖고 노는 게 일이다. 급기야 자기만 데이터가 안 된다면서 데이터 되는 폰 사달라고 떼까지 부리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친 적도 있다. 어차피 집에 오면 아이패드랑 노트북 붙들고 살면서 무슨 데이터까지 바라는지 어이가 없었지만 또래 아이들이 하는 게임이나 다른 앱들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그러는 거라고 이해하기는 했다.


데이터 차단된 폰이라서 싫으면 그것마저도 압수하고 그냥 아예 사용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건 또 아쉬운지 사용하겠다면서 한 수 수그리고 나오는 녀석이다. 엄마, 아빠, 외할머니 빼고는 딱히 연락하는 친구도 많이 없는데 그 핸드폰을 신줏단지 모시듯 학원 잠깐 갈 때에도 꼭 핸드폰 가방에 고이 넣어 매고 간다.


그날도 학원 마치고 오는 아이와 같이 장을 보고 놀이터를 지나쳐 오고 있었다. 역시나 놀이터에는 그 잘 노는 친구 무리들이 대여섯 명이나 모여 있었다. 다 같이 뭔가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같이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브롤스타즈 카드를 갖고 놀거나 몇 명은 자전거를 타는 중이었다.


아이는 갑자기 핸드폰을 급하게 꺼냈다. 벨소리가 울린 것도 아니고 알림이 온 것도 아닌데 핸드폰을 꺼내기에 나는 좀 의아했다. 괜히 아무 연락도 오지 않은 폰을, 쓸만한 앱도 전혀 없는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아이는 뭔가 바쁜 척 하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아이는 친구들 사이를 지나갈 때 덜 민망하기 위한 도구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핸드폰을 그런 용도로 쓸 때가 있긴 하다. 주변에 어색한 사람들이 있다거나,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데 딱히 할 게 없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 등 괜히 하릴없이 핸드폰을 꺼내서 만질 때가 더러 있다. 극단적으로는 동네에서 인사하기 싫은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부딪힐 때 핸드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랑 통화하는 척하면서 지나가는 연기를 한 적도 있다.


아이는 핸드폰의 그런 유용함을 벌써 간파하고 그런 식으로 활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속상하기도 하고 마음도 아팠다. 저 활달한 친구들과 얼마나 놀고 싶을까, 속마음은 그게 아닐 텐데 최대한 어색한 상황을 회피하고자 괜히 바쁜 척하려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니 여러 감정이 몰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도 이제 단단해진 건지, 예전처럼 잠을 못 잘만큼 괴롭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전에는 놀이터에서 애가 상처받고, 못 어울리고, 은근한 외면을 당할 때마다 그 일을 내가 당하는 것처럼 같이 상처받고 아이 입장에 내가 빙의가 되어 힘들어했었다. 퇴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울며 불며 왜 내 아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이제 맷집이 생겼는지, 아이와 관련한 웬만한 일에는 크게 상처받지는 않는다. 마음은 좀 아프지만, 그래도 아이가 나름대로 상황을 덜 불편하게 모면할 구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자기 나름대로 상황대처능력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인지능력이 좀 더 좋아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게도 된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핸드폰을 보는 척하면서 친구들을 지나치는 모습을 보고, 웬만하면 핸드폰을 압수하거나 뺏지 말자고 다짐했다. 스마트기기를 너무 좋아하고 집착하는 문제도 물론 있지만, 아이에게는 의외의 상황에서 자신을 구제해 줄, 자기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괜찮은 구실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뭐든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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