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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12. 2024

부탁 인생, 다시 시작입니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거면

복직이 가까워오니 점점 이래저래 걱정할게 많아진다. 업무적응에 관한 것도 대단히 큰 부분이고 적응 못할 할까 봐 두려워서 잠도 못 들 정도로 패닉상태가 될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산은 바로 아이 돌봄에 관한 문제다.


내 복직날짜가 아이의 방학 날짜 중간에 딱 잡혀있어서, 약 2주간은 붕 떠버린 상태가 된 거다. 양가 부모님도 가까이 살지 않는 터라 기존에 봐주시던 이모님께 연락도 드려봤다. 하지만 이미 다른 가정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쁘시기도 하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하루 종일 와서 돌봐주기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학원 뺑뺑이라고 해봐야 가서 한두 시간 정도하고 오기 때문에 집에 있을 시간이 많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이런 문제는 늘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 남편은 그다지 관심도 없고 내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를 뿐이다. 군말 않고 협조만 해주면 다행인 일이다. 속사정을 친정엄마에게 털어놨더니 아예 장기간 친정에 애를 데리고 가서 봐주신다고 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기거하면서 애를 봐주는 게 좋지만, 출근하시는 아빠도 챙겨줘야 하고 더군다나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서 자는 걸 굉장히 불편해하신다.


미안하고 죄송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러마라고 했다. 아예 애를 데리고 가서 봐주면 내가 업무 적응하는 기간에 더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아이에게도 학원 다 빼고 할머니집에서 맘껏 게을러지면 쉬는 진정한 방학(?)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생각해 보니 아무리 그래도 친정에만 맡기는 건 좀 미안할 것 같아서 시댁에도 하루 이틀이라도 부탁드리기로 했다. 어머님도 처음에는 반가워하시면서 봐주겠다고 했지만, 뭔가 그 대화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정 그렇게 맡길 데가 없다면 기꺼이 도와줄 수는 있다는 식의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확실히 친정엄마한테 부탁할 때랑은 또 다른 불편함이 느껴져서 아예 부탁드리지 말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양가 부모님, 친정식구들과 더불어 전에 봐주시던 이모님에 그나마 부탁하기 편한 동네 엄마들까지 동원되어야 할 것 같았다. 이만큼 애를 키워놨으면 혼자 두거나 친구랑 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 또래 관계가 편치도 않고 불안장애로 약도 복용하고 있는 마당에 혼자 두는 건 더 마음이 내키지가 않는다. 남편도 뻔히 반대할 거다.


며칠간 골머리를 앓으며 여기저기 전화하고 부탁하고 시간 맞추고 하다 보니 벌써부터 진이 빠져버렸다. 괜히 이번에 복직 신청을 한 건지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아이도 나도 이런 고생 안 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뭐 한다고 이 난리인 건지.


전에 일할 때 항상 이것 때문에 힘들었다. 비상시에, 급할 때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이모님과 시간을 조율하고 내 근무시간을 급히 조정하고. 센터 치료도 덜 붐비는 시간에 더 자유롭게 데리고 다니고 싶은데 항상 다 저녁에 가야만 했다. 그게 지겨워서 다 때려치우고 아이한테 올인하게 된 건데 막상 또 그 생활을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는 나를 마주하게 되니 기분이 이상하다.


'그냥 다 없던 일로 하고, 또 한 번 더 휴직 연장을 해야 할까..'


나 하나 희생하면, 나 한 명만 헌신하면 우리 가족과 양가 친척 통틀어 모두가 편해질 수 있는데. 잔잔한 샘물에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가 된 기분이다. 출근은 한참 남았지만 벌써 여기저기 부탁해야 하는 내 입장이 처량하다. 여자가, 엄마가 일을 하기란 이렇게나 힘이 드는 일이구나. 더군다나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나 같은 엄마에게는 더 허들이 높은 것 같다.


계산해 보면 아이 돌봐주는 대신 감사 표시 하느라 첫 달에는 들어오는 월급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져서 마이너스가 될 것 같다. 점점 더 허탈해진다. 무엇 때문에 나 이러고 있니.


그렇다고 집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기를 하나. 몸은 편해도 심적으로 더 불안하고 괴로움을 자주 느꼈다. 차라리 일이라도 하면서 몸이 바빠지면 잡념이라도 줄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생길 정도였다.


아이 걱정 없이 맘 편히 일하고픈데,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불가능한 꿈이 돼버린 건 아닐까.

다시 시작된 부탁 인생이지만 이마저도 그냥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이겨내자. 처음 얼마간만 힘들 것이고, 아이방학까지 끝나면 더 나아질거라고 기대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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