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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n 26. 2024

니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고

아이 치료 상담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 길이었다. 한 시간여 이상 상담을 하고 나니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나눈 게 전부인데도 기진맥진하듯 온몸에 힘이 쑥 빠졌다. 아이의 현재 발달 상태와 여러 가지 특성에 대한 피드백을 듣는 일은, 나는 몇 마디 안 하고 그저 듣기만 하는 데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드는 것 같다.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얼른 꼬르륵거리는 배 속에 뭐라도 집어넣고 싶었다. 날도 더운데 일단 시원한 아이스라테를 마셔볼까 생각하며 바쁘게 걷고 있었다.


내 옆으로 여자 두 분이 걸어가고 있었다. 둘은 오랜만에 만났는지 서로 반가워하면서 환담을 나누는 듯했다. 한 분은 나이가 꽤 있어 보였고 한 분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복장을 입은 젊은 여자분이었다. 잠깐 스치듯 지나갔지만 이야기를 듣자 하니 엄마는 아닌 것 같고 오랜만에 만난 이모, 조카 관계인가 싶었다.


둘은 누가 점심을 살 것인지에 관해 실랑이를 벌어는 듯했다.


"제가 살게요. 오랜만에 뵀는데.."


"어머, 니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그러니? 당연히 내가 맛있는 거 사주어야지. 뭐 먹고 싶어?"


"아니에요. 저도 돈 버니까.."


"아이고, 니가 벌면 뭐 한 달에 이백이나 버니? 그 돈으로 너 옷 사 입고 하려면 한참 부족할 텐데 너를 위해서 써. 오늘은 내가 쏜다! 어서 먹고 싶은 거 말해."


"어머, 저 그 정도 버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까르르.."




시종일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옆에 있는 나조차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드는 대화였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여자를 오랜만에 만났고, 그를 위해 밥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역력한 듯했다. 젊은 분은 자신의 작은 월급을 들킨 것에 대해 별로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이 있으신 여성분은 자기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는 그 젊은 여자가 기특하기도 하고 못내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아주 커 보였다.



그렇게 둘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어딘가 식당으로 향해 걸어갔다.

아이 상담 내용에 대한 복기로 가득 찼던 내 머릿속이 한순간에 그들의 대화로 주의를 뺏기게 되었다. 차라리 그게 더 나은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유독 '니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라는 말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남편이 줄곧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복직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이제는 휴직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할 때마다 처음에는 지금 이 상태에서 애를 누구한테 맡기고 일을 나갈 거냐고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굴레를 가지고 나왔다가 종국에는 그 말을 꼭 덧붙였다.


"네가 벌어봤자 이백 얼만데, 그 돈 가지고 이모님 쓰고 너 출근한다고 옷 사 입고 하면 남는 것도 없잖아. 그냥 지금 이대로 지내면 안 되겠냐?"


내가 출근하면 아이든 남편이든 모두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근거를 대는 남편을 향해 나는 별로 항변할 말이 없었다. 휴직 직전에 받았던 월급이 그래도 이백만 원대 후반이었는데, 남편은 그냥 이백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도 종내 자존심이 상했고 그걸 고쳐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마 휴직 없이 계속 일했다면 지금쯤 겨우 삼백만 원을 넘을지도 모를 월급인데. 가족을 위해 헌신하느라 경력은 끊겨버렸고 이제는 일터로 돌아간다 해도 그동안 못 낸 연금공단 세금이며 건강보험료며 갚으려면 정말 이백도 안 되는 월급 받자고 모두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건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 되어버렸다.


비록 십 년을 넘게 일했어도 박봉을 넘어서지 못하는 직장이지만, 그래도 내 소중한 직업이고 일터이다. 너무 오랫동안 쉬어버려서 이제는 어떻게 일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질정도가 되었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부진아 혹은 부적응아처럼 한참을 맨 땅에 헤딩하듯 헤매야 할 것 같지만.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중요한 건 월급의 액수보다 나의 일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남편을 떠나서, 자식을 떠나서 그저 오롯이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내가 책임감 가지고 처리해야 할 고유의 업무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가고 있다.


똑같은 말인데 맥락과 상황에 따라 어쩌면 이렇게 느낌이 다를까, 신기하기도 하다.

옆에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그 여자분의 입에서 나온 '네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에는 따뜻한 애정과 흐뭇함이 묻어 나온다면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나를 향한 못마땅함과 내 직업에 대한 비하가 담겨 있다.


하마터면 그 말에 나도 넘어갈 뻔했다.


'그래, 내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아직 어려움이 많은 아이 치료도 데리고 다녀야 하고, 남편도 늘 바쁜데 내조도 해야 하고. 나까지 일해버리면 모두가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니까.'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고착화되어 가고 점점 사실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벗어나보려고 한다. '니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를 극복해보려고 한다. 택도 없는 월급 받자고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이기주의자 아내 혹은 엄마라고 낙인찍어도 어쩔 수 없다.


어림반푼어치도 안 되는 돈이라도 내 힘으로 벌고 싶은 욕망이, 언제까지고 '니가 벌어다 주는 돈'에 의지해서 살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마주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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