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3년 전쯤 일이다. 동네 엄마들이 저녁에 가볍게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부른 적이 있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라 주로 오전에 커피나 한 잔씩 하던 사람들인데 그때는 모처럼 기분 내보자고 했던 것 같다. 한참의 고민 끝에 적당한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다. 그때의 소회를 글로 남기기도 했다.
내가 나갈 수 없었던 이유, 왜 동네 단지 앞에서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는 자리도 못 나갈 정도로 나는 괴로웠는지, 무엇 때문에 그리도 힘들었는지, 내가 잠깐이라도 저녁에 나가서 술 한 잔 하며 웃고 즐거워해도 될 자격이 있는 엄마인지에 대해서 한참을 깊게 고민했다.
그 시기의 나는 연약했다. 겉으로 티는 안나도 마음속은 항상 울고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이에게 ADHD 치료약을 복용시키기 시작했고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직장도 못 나가고 한 마디로 아이에게 올인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삶의 단 하나의 목표는, 아이를 정상 발달로 만들어보는 것. 아이를 제대로 키워보는 것, 친구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사회성을 만드는 것이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아침 긍정확언을 쓰고,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들 리스트를 작성하고, 실천하고, 반성하고 또 후회하는 게 나의 주된 일상이었다. 내 삶에는 아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대로 고쳐놓는 것도 내 몫이고, 아이는 내 삶의 숙제라고 여겼다. 그전에 살았던 대로 참고 인내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 아이도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고 믿고 확언했다.
몇 년 후 모두의 반대를 뒤로 하고 결국 다시 직장에 복귀하게 되었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직장에 돌아갈 때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내 삶과 아이의 삶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아이 감정이 내 감정이 되어 한 몸뚱이처럼 애가 상처받고 힘들어하면 나는 더 처절하게 울고 괴로워하며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아무리 내 아이가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도, 결국 학교에 가 있는 동안의 아이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하루에 7-8시간은 아이 스스로 또래도 상대하고 선생님에게 적응하며 지내야 한다. 그건 아이의 몫이다. 나는 그걸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면 된다.
집에 있을 때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전전긍긍하며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하교한 아이를 반기면서 학교에서 느꼈던 모든 부정적인 일들을 다 잠식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아이를 전방위로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때 나는 아마 경미한 우울증에 시달렸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에 나는 나의 엄마 자격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의문이 있었고, 아이를 애아빠에게 맡겨두고 감히 저녁에 밖에 나가서 술 한잔 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스스로에게 허락하면 안 된다며 나 자신에게 한없이 엄격했다. 그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아이와 눈 마주치고 함께 비비고 놀고 대화 한 마디라도 더 나누며 언어 발달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렇다고 엄마 역할을 완벽하게 잘한 것도 아니다. 후회되는 때도 수없이 많다.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잡아도 잡히지 않는 그 신기루를 향해 매일같이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여차하면 내 직장도 다 포기할 각오도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아찔한지 모른다.
이번에 저녁에 아이 두고 나갈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소심한 용기를 내어서 동네 엄마들 단톡방에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제안했다. 우리 저녁에 만나서 맥주 한 잔 하자고. 아마 많이들 놀랜 눈치였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여의치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동네 호프집에서 두 시간 정도 만나게 되었다. 20대에는 일주일에 몇 번도 다녔던 술집이 이제는 어색해졌다. 동네 술집인데도 만석이다. 이렇게 저녁의 삶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새삼 느낀다. 마른안주에 생맥주 한 잔씩 시켜놓고 잔을 모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잘은 모르지만 다들 자주 마실을 나오는 사람들은 아니라서 정말 오랜만의 여유였다.
나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다. 몇 년 전에는 술 한잔 하러 나오는 것도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응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제안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니. 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아이가 엄청나게 좋아졌나? 약물 복용 초기처럼 스펙터클하지는 않고 많이 적응이 되었다. 또래 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는지 체념 반 적응 반이 상황이다. 그때는 억지로 동네 엄마 아이들과 어울리게 해 보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놀이터에 데리고 나갔고 아이는 울고 상처받고 나는 사과하며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놀이터도 안 나간다. 그게 더 마음이 편하다.
아이도 나도 약간의 체념과 포기, 그리고 현실에 순응하면서 마음이 전보다 더 편해진 것 같다. 눈에 띄지 않지만 성장하면서 많이 나아진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맥주 한 잔에 참 많이도 웃었다. 웃는 내가 낯설었지만 그래도 그냥 웃긴 말에는 웃었다. 평범한 엄마들이 나눌만한 대화에도 적당히 끼고, 애들 어렸을 적 이야기도 하고,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엄마 위로도 하고, 꼴 보기 싫은 사람들 흉도 적당히 보면서, 그렇게 웃고 떠들었다. 술집에서 웃고 떠드는 나는 영영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있는 내가 어색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웠다.
다들 아이들 챙겨야 하니 10시가 채 되기 전에 자리를 떴고, 일 년에 한 번씩은 보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제야 내 삶을 조금은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나를 되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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