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차를 같이 타고 다닐 일도 많았고 자동세차장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엄청 신나 해서 놀이공원 가는 기분으로 세차장을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새 차를 혼자 타는 일이 더 많아지고, 현금을 거의 갖고 다니지 않게 되면서 세차장 발길을 끊은 지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확하게 백만 년 전이다.
요즘 들어 딸을 픽업 갈 때마다, '차 좀 세차하자'는 잔소리를 많이 듣곤 했다. 그때마다 며칠 뒤에 눈이 올 것 같아서, 언젠가는 비가 올 것 같아서, 앞 차도 지저분하네. 등등의 변명으로 모면하곤 했지만, 오늘은 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차가 지저분해서 세차를 하게 되었다. 최소한 문손잡이에 손자국이 남지 않고 문을 열고 싶은 소박한 바람 때문이기도 했다.
자주 온 듯이 행동하고 싶었지만 영 서툴다.
매번 기름을 넣는 집 앞 단골 주유소인데도, 기름만 넣고 내빼다 보니 어떻게 세차를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오며 가며 본 건 있어서 내부 세차도 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세차기계에 들어갈 때부터, 직원에게 '저 내부 세차할건데요'라고 선언을 했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에 묻혀서 뭐라 뭐라 하는데 다시 묻기 뭐해서 나도 그냥 아는 척했다. 기계를 통과하고 물기를 닦아주는 두 번째 직원에게 행여나 내부 세차 안 해줄까 봐, '저 내부 세차할건데요'라고 하니까, '예, 물기 닦아드리고요' 한다.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아까부터 꼭 쥐고 있었는데, 가격을 추가로 얼마를 더 내면 되는지, 누구한테 내면 되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한가득인데 직원들은 저마다 일을 하느라 물어볼 새도 없다.
물기도 다 닦았고 이제 저기만 통과하면 큰길로 나가게 되는 마지막 관문을 앞에 두고 있다. 세 번째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정차를 하고 차를 내리면서, 세 번째로 '저 내부 세차 (꼭) 할 건데요'라고 말하려는데 직원은 내 눈은 마주치지도 않고 2인 1조로 일사불란하게 앞좌석부터 뒷좌석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부 세차를 해 버린다. '아, 나 돈 내야 되는데' 혼자서 불안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는데, 직원은 내게 돈 달라 소리도 하지 않고 다 되었다고 수신호만 하고는 다음 차로 쌩 가버렸다.
그제서야 손에서 꼬깃꼬깃해진 만 원짜리를 도로 주머니에 넣으면서 깨달았다. '아, 내부 세차도 다 포함되어서 하는 거구나', 내가 안 온 백만년 동안 이것도 같이 포함되게 바뀐 거구나. 그것도 모르고 보는 직원마다 내부 세차 꼭 하겠노라 부르짖었으니.
차 유리를 통해서 보는 세상이 어찌나 밝은지 심봉사가 눈을 뜬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기분이 좋아서 백미러도 자꾸 쳐다보고, 사이드 미러로도 흘낏흘낏 쳐다보았다. 이렇게 깨끗할 줄 알았으면 진작 좀 자주 할걸. 돈 몇 천 원만 내면 이렇게 좋은걸, 그동안의 게으름을 후회했다.
마음도 이렇게 깨끗이 씻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차는 어쩌다 안팎이 다 깨끗해졌지만, 마음의 내부 세차는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 내 밖에 놓여있는 사물을 바꾸면 내 안쪽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내 자신이 너무 볼품없고 하찮다고 느낄 때, 집 안의 가장 적은 공간부터 정리를 하기 시작하면, 그게 나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마음이 오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서 비좁을 때, 거실의 작은 선반 하나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면, 내 마음에도 쉴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내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 마음의 번잡함은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이는 공간과 사물을 치우면서 그게 마음과 평행되게 작용하는 듯하다.
깨끗해진 것은 차이지만, 내 마음도 조금은 평화로워진 느낌이다.
천성이 깔끔 떠는 성격이 아니라서 매일 쓸고 닦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루에 공간 하나라도 깨끗하게 해 보려고 한다.
어제는 책상 정리를 했다. 오늘은 세차를 했으니, 내일은 거실 책 정리를 해볼까 한다.
더 이상 읽지 않은 책들을 버리고, 아직 안 읽은 책을 전진배치하고, 다음은 어떤 책을 읽어볼까 책상에 놓아보려 한다.
그럼, 내 마음에 더 이상 필요 없는 근심들이 버려지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마음들만 생각나고, 나는 어떤 마음에 최선을 다할 것인지가 눈에 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