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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27. 2021

다이어트 석 달 차,하마터면 라면물을 끓일 뻔했다

다이어트를 1월 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3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식사량을 기록하면서, 먹는 양을 조절해왔다. 버스 네 정거장 정도는 미리 내려서 걷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던 날은 50분 정도 동네를 걷는다. 중간에 정체기도 있고 체중이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지만, 오늘까지 5.5키로 감량 했다.

연예인들은 뉴스에 검색이라도 되려면 10키로, 20키로 정도는 빼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뺄 필요는 없고, 내 기준으로는 이 정도도 잘 해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6키로 감량을 목표로 삼고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위로하고 있다.


초반에는 체중이 매일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이니 신이나서 식단도 엄격하게 지켰었다. 이제 3개월이 넘어가니 체중도 답보상태이고, 지금까지 타이트하게 지켜왔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면서 정신줄을 놓을 때가 있다.


배는 불러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다.

석 달 동안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현미, 귀리, 율무로 된 밥을 먹었다. 거칠기 때문에 꼭꼭 여러 번 씹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반 공기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원래 잡곡을 좋아하고 씹는 식감이 재미있기도 해서, 이렇게만 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배가 불러도 뭔가가 고프다. 계속 허전한 마음을 갖고 유튜브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라면 먹는 동영상을 골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다. 한 번 보기 시작하니, 계속 연관된 동영상이 재생되어서 남들이 먹는 라면만 다섯 그릇째쯤 볼 때쯤 자칫했으면 라면물을 올릴 뻔했다.


아마도 몸이 정제된 탄수화물을 먹어서 혈당이 빨리 올라가는 만족감을 원했던 것 같다. 예전에 음식이 귀했을 때, 혈당이 올라가는 것은 생존에 필수였기 때문에 그 어떤 조건보다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자극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음식이 흔해진 요즘에도 오랫동안 몸이 익혀온 반응은 그대로이고, 우리는 이전보다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정제된 탄수화물에 아직도 끌리고 있다.


라면 하나 먹는데 그렇게까지 따질 일인가 싶기는 하지만, 때로 따지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몸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 지금이 상황이 달라졌지만 우리 몸이 기억하는 습관이 채 바뀌지 못한 것뿐이다. 하지만 멈춰서 짚어보지 않으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몸의 습관을 그대로 따라 하게 된다. 살아야 하는 본능이 멈춰서 따지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즉각적이기 때문이다.


멈춰서 따져보니, 이전에 배가 불러도 몸이 원한다고 이것저것 먹고 나서 정말로 행복해졌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렇지 않았다. 뒤늦게 찾아온 소화불량에 '아, 아까 참을걸'하면서 후회한 적이 많았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이전에 사 모은 크고 작은 노트를 많이 발견했다.

몇 년은 필기를 해도 남을 것 같은 새 노트들을 한 군데로 모으면서, 그것들을 샀을 때 내 마음을 기억해보았다. 괜히 이 노트를 사면 공부가 잘 될 것 같고, 계획을 더 잘 세울 것 같고, 제대로 일을 할 것 같고, 그러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고. 그렇게 해서 산 노트이지만 첫 장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거실장 어딘가에 몇 년동안을 빛도 못 보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또 일이 잘 안 풀리자, 똑같은 생각의 회로로 새 노트를 사기를 반복했었다. 노트보다는 나 자신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는 게 더 우선인데, 나는 일단은 눈에 보이고 왠지 금방 해결될 것 같은 방법을 선택해 본 것이다. 진실을 마주하기는 두렵고 아프니까 말이다.


우리 몸에 자동으로 입력된 회로를 가끔씩은 끊고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우울할 때마다 무언가를 사려고 하지는 않는지? 그 물건을 사고 나서도 만족감이 유지되던지? 새 물건이 내 자존감을 정말로 높여주는지?

누군가를 볼 때마다 자동으로 화가 나지는 않는지? 미워하는 마음이 갖고 있는 뿌리는 무엇인지?

나쁜 일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아 어찌할 줄 모를 때, 정말로 그 불안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지? 내 마음은 어디에서 오고 있는 것인지?


실제로는 마음의 근원을 알아내는 작업은 어렵다. 그만큼 우리는 자동으로 만들어진 방어기제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끊는 것만으로도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경험이 있다.


나를 남 보듯이 해보자.

거의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을, 잠시 끊고 나를 남 보듯이 관찰하다 보면 그 즉각적이었던 반응이 사실은 당연하지는 않다는 사실, 내 진정한 자신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날은 그렇게 해서 라면물을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 날 결국은 라면을 먹었다는 것은 안비밀.

뭐, 매번 성공할 수 있겠나? 가끔은 나도 모르는 척 탄수화물과 나트륨만으로 이루어진 음식에 빠진다. 그래야 그 다음 날 또 열심히 식이조절을 하고 동네를 걷는 원동력이 나오지 않나 스스로 위로를 해 본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 보고.

나머지 0.5키로를 향하여 오늘도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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