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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Apr 05. 2021

손금

오랜만에 손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엉터리 손금을 봐주었던 기억이 다. 생명선이 어떠니 재물운이 어떠니,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자기도 모르는데 어디서 얼핏 들은 소리를 재미 삼아 떠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십 대 소녀들에게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남편운이 어떠니, 남편이 잘생겼니 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어느 손가락 마디 넓이가 미래 남편의 미모에 비례한다는 설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뭐 그리 중요했을까?  남편 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라(지금 다시 보니 굉장히 잔인한 말인 것 같다)고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닥쳐오는 시험 준비보다 누구인지도 모를 남편의 미모가 그렇게 중요했나 보다.


'왜 하필 손금일까?'

또또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질문에 목숨 거는 지병 때문에, 이 질문에 꽂혀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런 질문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먹고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설사 질문에 답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먼 옛날 손금에 관심을 가졌던 누군가를 생각해보면서, 그게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나름대로 짚어보는 일, 그런 일이 내게는 활력소가 된다.


우리 몸에 있는 여러 가지 관절이 움직이면서 선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략 살펴봐도 손금만큼 다채로운 선들이 만들어지는 곳은 없다. 무릎에도 주름이 잡히고 발바닥에도 손금 비슷한 선들이 있지만, 손금만큼 여러 방향으로 선들이 뻗쳐지고 잔선들이 많은 곳은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인 우리가 손만큼 미세하게 그리고 많이 사용하는 신체부위는 없다. 손을 움켜쥐고 펼 때마다 손에 주름이 생긴다. 손에 접히는 선이 없다면 얼마나 손이 움직이는 데 불편하겠는지.

그러다 보니, 여러 선들이 많이 생기는 손바닥을 누군가가 물끄러니 바라보다가, 또 사람마다 그 선들의 모양새가 서로 다른 것을 알아차리고는, 이 선들이 말하는 바가 있겠구나 생각했겠다.


손금이 나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손이 접히고 펼쳐지는 동작이 내 손금을 만든다.

내가 웃고 울고 찡그리고 화냈던 많은 감정들이 내 표정을 만들듯이.

내 생에 있었던 부침이 나를 만들듯이.


같은 논리인 줄은 모르겠으나, 그래서 나는 내 주름살이 싫지 않다. 내가 살아온 감정의 역사를 억지로 지우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게 내가 살아온 여정과 같은 건데, 그걸 조금 편다고 해서 내 지난 감정들도 없어질까?

주름살 하나에, 내가 어떤 일에 기뻐서 환히 웃던 순간이 있었을테고, 누군가가 원망스러워서 펑펑 울었던 순간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그런 수많은 순간들이 모여서 내 주름이, 내 얼굴이 만들어졌으리라.

감정은 나쁘지 않다. 슬플 때 슬퍼야 하고, 화내야 할 때 분노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그걸 숨기고 안 그런 척, 좋은 척하다가는 끝끝내 숨기지도 못하고 어느샌가 폭발해 버리고 만다. 슬픔을 인정하는 법, 나도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내 삶의 부침도 마찬가지이다.

늘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라지만, 내가 정말로 힘들었던 시간들도 모여서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그 덕분에 내가 더 강해졌고 조금 더 현명해졌으며 조금 더 느긋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도 관심이 생겼으며, 그들은 어떻게 그 아픔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 이제는 앞으로 더 빨리 가는 대신에,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게 되었다.

아직 세상을 다 살지도, 미처 다 지혜로와지지도 못했지만, 인생 중에 넘어야 하는 파도를 겪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그 파도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더불어서.


내 손금을 다시 쳐다본다.

누군가 정말로 손금을 잘 해석하는 사람이, 내 손을 보고는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슬픈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군요. 하지만 슬픔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 당신에게는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걸 슬픔 한가운데에서 아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요.

기쁜 일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당신은 자만하지 않았군요. 그 대신에 기쁨을 독식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나눈 것은 정말로 잘한 일입니다. 그들이 당신이 다시 슬플 때, 받은 기쁨을 당신에게 다시 돌려주러 올 겁니다.'


나는 아직도 인생을 배우고 있고, 앞으로도 있을 내 부침에 겸허하게 머리 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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