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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May 16. 2022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

결혼하기 전에 약 10개월 정도 보태니컬 아트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이 있었는데 퇴근하고 1시간 거리의 수업장소까지 가서 수업이 끝나면 또 1시간을 걸려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비록 아이를 임신하고 몸이 피곤해져서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때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 집에 보관하고 있다.


보태니컬 아트는 '식물 세밀화'라고도 하는데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표현해 내는 예술이다. 나는 초심자였기 때문에 유명한 작가들(주로 빌리 샤월, 앤 스완)의 작품을 색연필로 모사했다.


딸기: 앤 스완의 작품을 모사


보태니컬 아트를 하며 재미있었던 점은 내가 알고 있는 식물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단순화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딸기는 빨간색 바탕에 검은색 씨가 박힌 것인데 자세히 보니 딸기 씨는 '노란색'에 가까웠다. 이를 깨달은 지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딸기 씨를 노란색으로 그리고 있는 딸에게


"딸기 씨는 검은색 아니야?"


라고 물었던 바보가 바로 나다. 편견이란 것이 참 무섭다. 어쩌면 편견 없는 어린아이의 눈이 어른보다 훨씬 정확하겠다 싶었다.


아네모네: 빌리 샤월의 작품을 모사


보태니컬 아트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꽃'이다. 꽃의 종마다 꽃잎, 잎사귀, 줄기, 수술, 암술의 모양이 같은 것 없이 모두 다 다르다. 꽃은 매일 보아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 세밀화를 그릴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꽃을 그릴 때의 포인트는 꽃잎의 '결'이다. 꽃잎을 아주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이 살아있는데 그 '결'을 얇은 색연필로 하나하나 표현해줘야 했다.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마음 수양(?)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느린 작업이었다.


작약: 빌리 샤월의 작품을 모사


우리가 늘 봐왔던 식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모습 투성인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을 가져주는 만큼 그 사람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보태니컬 아트를 배울 때의 자세로 사람들을 자세히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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