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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Mina Oct 10. 2020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어느 하루살이의 고백 



첫 직장 퇴사 후 단 한 번도 글로써 그 당시의 추억이나 감정을 꺼내 본 적이 없다. 아니, 꺼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간호학과 졸업 후 정해진 종착역처럼 대형병원에 간호사로 입사하였다. 사회 초년생의 부푼 꿈을 안고 나는 중환자실에 지원하였고, 병원에서 가장 힘들다는 내과 중환자실에 발령을 받았다.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병동에 간 날. 어수선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속에서 나는 그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도 열심히 배우고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능숙한 간호사가 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에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모든 일에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기를 잘 이겨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기는 결코 빠르게 나에게 오지 않았다.




‘하루살이’




그래, 딱 이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 한 단어에 내 모든 감정과 상황들 다 담을 순 없겠지만 당시에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


출근할 때면 오늘 하루만 무사하길 기도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고, 오프가 지나고 출근을 하기 전날이면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 마냥…. 이 부분은 대부분의 신규 간호사라면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출근하면 간호사마다 배정된 환자를 알 수 있는데, 경증환자인지, 중증환자인지에 따라 나의 하루는 결정된다. 경증환자라면 오늘 하루는 무사한 거고, 중증환자면 그날 8시간은 정말 숨 막히게 일해야 한다.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10분 만에 후딱 먹고 일했던 날이 수두룩했다.


시간이 지나면 능숙해지겠지,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오산이었다. 6개월, 11개월...시간이 지나도 나의 '불안함'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내 자신을 부적응자로 만들고 있었다. 나도 노력하고 있고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는 자꾸만 멀어지는 느낌일까?



1분 1초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민첩함, 정확함을 기반으로 동시다발적인 일처리가 이루어지는 상황이 내 성격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내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넘겼을 문제들도 사회 초년생인 나는 문제를 내면으로 흡수하여 내가 잘못하여 비롯된 일이라 생각했다.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을 달래지 못하고 휩싸여 ‘나는 여기서 오래 버틸 수 없어, 나는 부적응자야’라고 몰아갔다. 그런 과정에서 나의 자존감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전락하고 있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살 순 없었다.




그리고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고 싶었다.




정말 이를 악물고 1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버텼다. 여차여차 결국엔 1년 5개월이라는 임상경력을 끝으로 퇴사했다.


퇴사 날. 나의 캐비닛 물건을 싹 정리하고 전속력으로 뛰어서 병원을 나왔다. 이건 다른 세상으로 점프, 날갯짓이었다.






내게 열린 다른 문 


아무 계획 없이 결정한 퇴사는 나를 위한 구제였다. 퇴사 후 미국 여행을 다녀온 나는 4개월 차 백수가 되었다. 4개월이 지나니 슬슬 나의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했고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너무 소박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꿈은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것이었다. 남들처럼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 주말, 공휴일에는 온전히 쉴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 말이다.


어느 날, 공기업에 지원했고 합격하여 직장인이 되었다. 입사 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점심시간이 1시간이라는 것. 병원에서는 차례로 돌아가며 양치까지 30분에 모든 걸 마쳤는데, 1시간이라니!! 거기에 식후 커피까지 마시는 여유로움. 남에겐 일상이지만 처음인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훗날 1시간도 짧다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유학 휴직 포함 약 5년이라는 회사 생활이 지나고, 고민은 시작되었다. 고민의 시작은 회사의 지방 이전이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현실로 다가올수록 결단을 내야만 했다.


나의 생활 터전은 옮기지만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며 살 것인지,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 다른 삶에 도전할 것인지.




누군가는 그랬다.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린 후,


리스크가 아니라 가능성을 선택하라고.




내가 그려볼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간호사 면허증으로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그 정도의 최악의 상황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지금 행동하지 않음에 따르는 시간낭비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도전에 손을 들고 다시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퇴사하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는 용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생각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성장하고 있다. 그 첫걸음은 디지털 노마드의 삶. 나는 이제 나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오롯한 나의 자유를 위해 성장할 것이다. 훗날 누군가에게 내 노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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