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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Mar 10. 2024

나를 채우는 단어, #6. 관계

06. 관계




#관계 :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많은 이들이 결국 홀로라는 걸 깨닫는 순간,

의미가 옅어지기 시작하니까.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의 관계를 맺는 일을 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의 하루는 일련의 관계 속에서 흘러간다.


관계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지만, 오늘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은 한편으로 관계에 지치면서도, 보다 깊은 관계를 원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은 경험은 자연스레

관계에 일정 거리를 만드는 계기가 되버리기도 한다.


그와 사이에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물을 묻히지 않은 각자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


그렇게 바라는 볼 수 있으면서, 조금 대화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띄워두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어른이 되고 나면 누구나 생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어떤 상대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상대가 그 시냇물을 넘어와 주길 바랄 때가 있다.


오늘따라 날도 꽤나 따듯하고 시냇물이 유난히 맑아 보여서. 살짝 옷이야 젖긴 하겠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느껴져서.


반대로 내가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다.

한 번 넘어와 보니 수고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만한 일이라서.

내가 한 번 넘어갔으니 이번엔 상대가 넘어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게 된다.   






우리 집 앞에는 좁은 냇가가 하나 있다.

몇 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집 앞 냇가를 수도 없이 산책했더랬다.


겨울이 되면 냇가의 물이 많이 말라 속이 훤히 보인다.

물높이는 많이 낮아졌는데 그만큼 물속의 이끼들과 지저분한 부유물들이 잘 보인다.


여름이 되면 물이 많아진다.

특히 비가 온 다음날은 물 흐르는 소리가 남다르다.

한 번씩은 물이 산책로를 범람해 산책로가 한 껏 지저분해지기도 한다.


  




깊은 관계에 필요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도 '수고스러움''시간'이 아닐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너무너무.

너무너무 싫으면서도

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 소중하고 원한다.


처음부터 잘 맞을 수가 없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서 그 수고스러움과 많은 기대, 상처, 오해, 짜증, 절망.

이따금씩 찾아오는 공감, 편안함, 긴장, 열망, 보람, 만족, 기쁨.


그 관계를 유지해 내기 위해 보내는 시간. 그렇게 쌓여온 시간.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대에게 보다 위로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으며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기대가 있지만

관계의 역사가 쌓여간다고 해서

내가 더 위로받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더 편해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 안의 관계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변화할 수 있고 내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더 나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의미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러고 나면 위로받을 수 있고 편해질 수 있다.

서로가 그러하다.



만약 어떤 관계로 인해 '내 시간을 허비했다'거나 '상처만 가득 받았다'라고 오해하고 있다면

나는 당신이 누가 되었던 그동안 한 모든 것들이 다 의미로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수고스러움이 결국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까지의 여러 관계의 경험들 속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는 관계들을 만났다. 오늘도.

내가 느꼈을 만큼 수고스러움을 느끼며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 나와 관계 맺어주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


한번씩 시냇물을 건너기와 주기도 하고

함께 시냇물 속에서 물장구치고 넘어지기도 하며

그 속의 지저분한 이끼와

그 속의 사랑스러운 송사리를 마주하는

그렇게 역사를 쌓아가는 관계.


겨울이던, 여름이던.

냇가의 물이 어찌 되던 앞으로도.

긴 시간을 냇가를 건너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

냇가 속에서 함께 발장구 치고 싶다.

그런 이들 덕분에 나는 더 나다워지고

나는 더 충만해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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