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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Feb 26. 2024

나를 채우는 단어, #5. 관찰

05. 관찰



#관찰 :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



길거리를 걸을 때.


당신은 스치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편인가?

혹은 길거리의 풍경에 집중하는 편인가?


이런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야, 너 어제 왜 나 아는 척 안 했어?"

"너 그날 ㅇㅇ에 있었지? 나 너 봤어."


나는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이 지나가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약속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친구가 코 앞까지 왔는데도 몰랐던 적이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주변 풍경을 보느냐, 그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어떤 '목적'을 두지 않은 상태에서의 나는 주변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길을 걸을 때의 나는 멍한 상태이거나, 그날 해야 하는 무언가의 일들에 대한 생각들을 주로 하는 편인 듯했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지 않으니 사람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익숙한 길거리의 풍경일 뿐이니 그 또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반대로 길에서 누가 날 쳐다보아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어릴 적 친구와 함께 번화가 길거리를 다니며 시간을 보낼 때,


"저 사람은 왜 자꾸 우리를 쳐다보지? 신경 쓰이게."


이런 친구의 말이 새로웠던 적이 있었다. 모르는 타인이 쳐다보는 게 신경이 쓰이는 일이구나. 






언어치료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시간은

주로 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로 채워졌다.


나의 목적은 아이들의 언어발달과 의사소통능력이 보다 나아지도록 돕는 것이었고 이는 결국 이 아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적으로 나아갔다. 


아이의 능력을 보다 끌어올려야 해.

아이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도록 이끌어야 해.


목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을 때,

어떨 때는 좋은 결과가 뒤따랐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이를 치료하는 동안 내가 계획한 '목적'을 위해 조급해지는 나를 발견한 어느 날.


그렇다.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그건 발견이었다.


단추가 잘못 끼워졌구나.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도 내게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던 아이를.


왜 여태 보이지 않았을까? 아니, 볼 생각을 못했을까?

 

반면에 나는 ''만 바라보고 있었고, 내 소통에는 나의 목적만이 가득했다는 걸 발견했다. 


 




그날부터.

나는 내가 만나고 있는 모든 아이들을 관찰했다. 아이의 보호자도 관찰했다. 

관찰은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바라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숨 쉬는 공간과 시간의 축에서 아이를 살펴보고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다.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하자

방금 지금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상황과 지금 아이가 보이는 행동이 연결되었고

아이의 과거와 상황을 더 관찰해 갈수록 

지금 아이의 모습이 보다 선명하게 보이고 이해되었다.

방금 전과 직후로 시작한 관찰은 아주 과거지금, 그리고 다가올 추후연결해 주기 시작했다. 



 




나는 상대를 보다 이해하고 싶다.

세상을, 우주를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이 마음은 나 자신에게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관찰을 해 본다.

이 노력이, 이 시간이 쌓여 다가 올 추후를, 그 후를  엿본다.


요즈음은 한 번씩 길거리를 걸을 때면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도 눈에 스민다. 

그리고 나면 나 자신도 한번 관찰해 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오늘 무엇을 관찰했을지 궁금하다. 

당신의 세밀한 눈길의 끝에 

작은 반짝임이 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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