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을 지나다니다 보면 '스터디 카페'가 많이 보인다. 난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저게 뭐냐 물어보니 친구가 독서실이랜다.
'왜 우리 어릴 적에 많이 갔잖아, 독서실. 그거야.'
학생시절, 나는 죽어라 집에선 공부가 안 됐다. 내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자면 그렇게 cd플레이어를 만지작 거리는 게 재밌고, 10분마다 부엌에 있는 간식거리가 생각나고, 바로 옆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싶었다.
그래서 중 고등학생 때는 독서실과 대학교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집 근처 독서실. 한 달에 몇 만 원을 내면 내 자리 한 칸이 주어진다. 내 집도 아니고 전세도 아닌 그 한 칸에 앉으면 막 채우기 바쁘다. 책상정리를 내 눈에 보기 좋게 하고, 메모도 좀 붙여 둬야 한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정리를 끝내고 나면 수다 떨러 나갈 시간이다.
도서관이라고 다른가. 큰 언니야 오빠야 대학생들 공부하는 것도 보고 대학교 건물 구경도 좀 하고. 자판기 음료수도 뽑아 먹다 보면 시간이 또 훌쩍 지나가 있다.
내가 독서실이나 도서관에서 그렇게 공부를 빙자한 시간 때우기를 하다 보면 한 번씩 궁둥이가 양면테이프를 붙여놓은 것 마냥 의자에 착 달라붙어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너 허리 안 아파?'
'그렇게 공부하면 안 힘들어?'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집중을 잘하지? 나는 뭐랄까. 집중이 잘되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퐁당퐁당 번갈아가며 있었다. 집중이 잘 되는 날은 기분 좋게 공부하며 신이나 했다. 이해도 잘 되고 공부가 조금 재밌는 날. 하지만 그런 날은 별뽀빠이 과자 속 별사탕 마냥 손에 꼽았고 대부분은 집중이 안 되는 날이었다. 집중이 안되지만 해야 해. 으 근데 하기 싫다. 안돼 안돼, 내일모레 모의고사야. 얼른 보자.
집중을 잘하던 그 친구는 나랑 이름 끝글자가 똑같았다.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 친절해서 내가 참 좋아했던 그 친구. 그 아이에게 매번 물어볼 때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하는 거지 뭐.'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그때 그 말이 어찌나 어른스럽게 들리던지. 그 친구의 묵묵한 끈기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내 추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나 자신을 끈기가 없는 편이라고 여겼다. 여전히 나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 놓는 일상 속에 살았다.
난 끈기가 없는 편이야.
그 한 문장으로 결정된 나의 세계는 그만큼 작아졌다. 책을 한 권 읽다가 완독을 하지 못할 때마다, 하나의 취미생활을 시작하고 그게 얼마 안 가 끝나고 다른 취미를 찾게 되었을 때나, 한 가지 립스틱을 끝까지 다 바르지 못하고 다른 립스틱을 살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끈기가 없는 편이야.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작아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끈기 있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부럽고 그저 부러웠다. 난 왜 끈기가 없을까.
어느 날 오후. 이불속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잘 읽고 있다가 어느 부분에서 책의 내용이 나와 초점이 맞지 않았다. 내용이 동의는 되었지만 공감은 되지 않았달까. 맨 앞에 나와있는 책의 목차로 돌아갔다. '이 부분은 건너뛰고.. 음 보자. 이 부분부터 봐볼까.'
그 순간, 갑자기 끈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끈기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끈기는 '쉽게 단념하지 않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이라 쓰여있었다. 잠깐만. 거실에 있던 책장을 쳐다보았다. 빼곡하게 차 있던 책들. 매번 책을 다 못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늘 책을 읽고 있었다. 취미가 바뀌긴 했지만 늘 취미생활을 즐겼다. 몇 번 이직을 하기는 했지만 난 여전히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투덜대긴 했지만 한 번도 내 인생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조금 흥미가 바뀌어서, 혹은 공감이 되지 않아서, 또는 변화가 필요해서 멈추거나 변경했던 많은 일들. 나는 정말 끈기가 없었을까? 끈기의 정의를 곰곰이 씹어본다. 그리고 나를 한 번 바라본다. 나라는 사람을 속단하지 말자. 자신 있게 끈기가 있다고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그렇다고 나를 쉬이 단정 짓거나 한계 짓지 말자.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제나 나는 내가 똑똑한 편이 아니라고 여겼다. 무언가를 한 번에 잘 배워내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운동신경이 좋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억력? 핸드폰을 손에 들고 찾는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게 바로 내 얘기다. 수학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이나 문제해결능력도 재빠르기보다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나였다.
그런 나에게 끈기, 무언가를 견디어 나간다는 이 단어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운동신경이나 수리력, 기억력 등은 잘은 모르지만 뭔가 선천적인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끈기나 지속력과 같은 능력은 내가 노력하면 충분히 나도 얻을 수 있고 내 매력이 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좋았다. 끈기라는 단어가. 그래서 끈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내 인생을 끈기 있게 살고 싶다. 비록 한 권, 한 권의 책을 전부 다 완독 하지는 못하더라도 늘 책을 읽는 나. 집안일을 하루 만에 전부 다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이번주 주말에 서랍장 하나, 다음 주 주말에 아들 책상 하나, 이렇게 조금씩 주말마다 집 정리를 하는 나. 언어치료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쓰며 한 가지 직업만 고집하지는 않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소통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나. 그렇게 포기라는 단어와 점점 멀어진 하루를 채우고 나면, 하루가, 하루가 계속 채워져 가다보면 보다 끈기라는 단어에 가까이 마주한 나를 만날 거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