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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Apr 23. 2022

우리 동네 사랑

소소한  기쁨

매일 아침 출근길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다는 건 소소한 기쁨이다. 그것이 살아있어 나날이 변화되고 성장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인 것이다.


어른 가슴께 높이의  벽돌담 안이라 주변 관심만 가진다면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다. 시간 날 때면 들어가 가까이 다가가 봐도 좋을. 눈이 맑아지고 가슴이 풍요로워진다.

아파트 오른쪽 담은 연립주택과 맞닿아 있다. 우리 아파트만큼 오래된 연립주택의 화단은 꽃과 나무들보다 텃밭이란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먹거리 채소들이 계절마다 자라는 것이다. 으레 화분하면  떠오르는 꽃과 나무들이 자라야  할 공간마저 갖가지 채소들이 차지하는 건 기본인 듯.

떠오르는 아침 햇살 받으며  제각각의 푸릇푸릇한 잎을 뽑아올리는 모습이 어찌나 기운찬지 무겁게 내딛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입주 때부터 계셨던 한 어르신이 그 한쪽 텃밭을 도맡아지으신다는 소식을 담벼락 너머 구경하다 한 주민께 들었다. 아주머니께서도 연립주택 지분이 있으니 먹거리를 키우고 싶으신 모양.

이사 온 지 몇 년 되지 않다고 하신다. 밭을 일구시는 어르신께선 90 넘은 연세에 살짝 치매까지 오셨다는 거다. 이웃 사람들이 말한 마디 잘못 꺼냈다가 난리 난 뒤부턴 사시는 날까지 개인 땅처럼 쓰시도록 내버려 둔다고 했다.


30년 넘게 텃밭 농사를 지으신 덕분인가.  질서정연하게 줄 세워 정갈한 손길이 느껴져 담 너머 고개를 디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새 생명의 솟아오르는 희망참이.


아파트 왼쪽 담은 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부엌 창에서 내려다 본  대학교 운동장

대학교나 아파트 화단은 온갖 꽃과 나무들 차지. 멀리 내려다 보이는 초록의 학교 운동장도 시원해 보이고 나무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잎들도 싱그럽다. 어느 봄날 통로 한 어르신께서  아파트 화단 한 구석탱이에 작은 밭을 일궈 고추 모종을 몇 뿌리 사다 심으셨다. 오가며 고추 모종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겠는 걸 생각도 하기 전,


심자 마자라고 할 정도로 재빠르게 뿌리째 뽑혀 있었다. 경비아저씨나 관리실 직원께서 순찰 돌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뽑으신 거 같았다.


한 두 사람 봐주다 보면 순식간에 모든 화단이 텃밭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 공동으로 사용돼야 할 공간이 몇몇 사람 작물 재배로 인한 분쟁 소지가 있겠다는 생각 때문인 거 같다.

서로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 나기 전 아예 차단을 시켜버린 꼴. 고추 모종 주인께서 왜 뽑았냐고 따졌으려나. 큰소리 내더라도 관리실 입장에선 충분히 납득시킬 이유가 분명했을 테니. 그런 덕분인가. 모종이나 씨앗 뿌려 작물 재배하는 곳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주민들 아파트 규약으로 정해 놓았을 텐데, 그걸 모른 어르신께서 재미 삼아 키워보려 했을 수도 있고. 그 나이 때 어르신은 보고 즐기기만 하는 것보다 땅에선 작은 생산물이라도 나와야 제 가치를 한다고 생각하는 걸 우리 어무이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작은 땅만 있어도 씨나 모종을 심으시고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매화나 배, 석류나무 등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심는 것이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 누군가 일군 작은 텃밭을 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한참을 서서 바라보시기도 하셨다. 나만 신기해서 들여다본 것이 아니었던 것. 밭 가운데 대봉 감나무도 한 그루 자리했다.

감잎 뽀송뽀송 나오는 지금부터 밑동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을 기다릴 수 있고, 텃밭에 담길 온갖 채소들이 자라는 걸 매일 오가며 볼 수 있음이 작은 기쁨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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