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쿨섹과 84% 더 받는 일본 연금의 비밀

65세부터 받을까, 75세까지 미룰까 일본인들의 선택지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은 방영된 지 꽤 된 작품입니다. 최근에서야 보게 되었는데,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노하라 료코와 함께 등장한, 반듯한 수트 차림의 남자 배우. 말투도 단정했고, 이미지도 깔끔해서 괜히 한 번 더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이름을 검색해보니, 고이즈미 코타로라는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낯이 익었습니다. 누군가를 닮았다 느꼈고, 곧 떠올랐습니다. 고이즈미 신지로. 그러니까, ‘펀쿨섹좌’라는 별명으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던 그 정치인. 깔끔한 외모와 엘리트 경력, 다소 허당스러운 발언까지, 묘하게 대비되던 그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닮았는데 성도 같다? 설마 정말 형제일까 싶어 다시 검색해봤습니다. 형은 배우, 동생은 정치인. 고이즈미 코타로와 고이즈미 신지로는 실제 형제였고, 장남과 차남이라는 설명이 곧바로 붙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회사를 지키는 역할의 형, 현실에서 총리를 지키던 전 환경대신 동생.


그리고 그 둘의 아버지는 바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2000년대 초반, 일본을 대표했던 총리이자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본 연금제도의 구조 개혁을 처음 감행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과 얼굴은 자주 봤던 기억 덕분에 남아 있었지만, 그가 연금을 직접 손봤던 인물이라는 건 이번에야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일본의 연금제도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했지만, 구조를 바꾸는 일은 아무도 쉽게 손대지 못했던 영역이었습니다. 보험료와 수급액, 세대 간 부담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조금만 건드려도 정치적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죠. 하지만 배우이자 장남 코타로와 정치인이자 차남 신지로의 아버지인 그는 2004년, 균열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당시 일본은 장기불황과 고령화라는 두 개의 큰 파고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연금 재정은 조용히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단을 내립니다. 보험료를 해마다 조금씩 올리고, 수급액 증가를 억제하는 방식의 개혁을 단행합니다. 이른바 ‘거시경제 슬라이드’.


물가나 임금이 오르더라도 연금이 그만큼 오르지 않도록 설계한 조정 장치를 마련했죠. 숫자상으로는 연금이 늘어날 수 있어도, 체감으로는 줄어드는 구조. 지금 세대가 덜 받고, 다음 세대에도 제도가 남을 수 있게 하자는 계산이었습니다.


그 개혁은 지금까지 일본 연금제도의 기본 틀을 이룹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2022년, 일본은 다시 한 번 제도를 손봤습니다. 이번에는 ‘언제부터 받을지’를 개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혔습니다.


이제는 70세까지만 가능했던 연금 이연 수령 시점을 75세까지 미룰 수 있도록 바뀌었고, 수급 시기를 늦출수록 월 지급액이 늘어나는 구조도 함께 도입되었습니다.


65세에 받는 것보다 75세에 받으면 약 84%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 예를 들어 매달 1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75세에 시작하면 184만 원으로 늘어난다는 얘기입니다. 들었을 땐 의외였습니다. ‘그걸 기다릴 수 있을까?’ 싶었죠. 현실에서는 여유보다 절박함이 먼저 오는 시기니까요.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선택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일본에는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일본인 파트너와의 통화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잠시 조용했던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연금 75세에 받으실 거래요.”


“그렇게나 늦게요?”


“네. 아직 마트에서 계산대 서세요. 하루 네 시간”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연금을 미룬다는 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사회에서 쓰이고 있다는 감각일지도 모릅니다. 일을 할 수 있고, 할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걸 이상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


일본의 풍경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건 단지 개인의 건강이나 의지가 아니라, 사회가 준비되어 있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정년을 65세까지 끌어올리는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시행했고, 이후 2021년에는 '70세까지 고용 노력 의무'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기업들도 재고용 계약을 통해 고령 직원을 남기고, 병원 접수대나 공공 창구 같은 고령자 친화 직무를 점차 확장했습니다.


그 흐름은 숫자로도 보입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률은 25%를 넘었고, 70대 초반까지 현장에 머무는 비율도 늘어났습니다. 단시간 알바가 아닌 정규 시간제 근무, 계약 기반 업무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고령자에게 "할 수 있다"는 감각을 제공했고, 그 감각이 연금 선택지를 바꾸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 감각을 누리는 건 아닙니다. 노동 강도가 높은 일자리엔 여전히 벽이 존재하고, 일부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구조를 감내하고 있을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나이에 그 일을 한다고?’라는 시선을 받지는 않습니다. 일하는 노년은 이제, 일본 사회에서 특별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장면일 뿐이니까요.


한국은 조금 다른 풍경입니다. 고령자 고용률은 높다고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구조는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60세 정년은 여전히 관행처럼 남아 있고, 실제로는 55세 전후부터 퇴직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을 떠난 이후의 재취업은 대부분 일시적이며, 자영업이나 단기 알바 등 생계형 일자리로 이어지곤 하죠. 이는 경력의 연장이 아니라, 생활의 버팀에 가까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연금을 늦게 받겠다는 선택은, 여유이자 용기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가능하려면, 기다릴 수 있는 사회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은 그렇지 못합니다. 단절된 소득을 메우기 위해 노후자산을 먼저 꺼내 쓰는 일이 흔하고, 문제는 그 자산이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60세 납부 종료, 62세 수급 개시가 기본입니다. 이 시기를 미루면 수급액이 늘어나는 구조지만, ‘더 받는 금액’이 지금 당장의 생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선택의 의미는 퇴색됩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66세 이후 수급을 택한 사람은 전체 수급자의 1.3%에 불과했습니다.


제도는 있지만, 그것이 ‘현실의 선택’으로 작동하려면, 일할 수 있는 구조와 기다릴 수 있는 기반이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일본은 연금의 문을 열었고, 그 안에 ‘일할 수 있는 자리’부터 먼저 채워 넣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조금씩,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기와 방식을 선택해갔죠.


한국은 아직 그 준비가 덜 된 사회입니다. 제도는 있지만, 선택은 제한적이고, 준비된 노년은 여전히 예외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정말, 늦게 받아도 괜찮은 시대를 마주하고 있을까요.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해서,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조건’ 그 자체가, 연금보다 더 귀한 노년의 자산일 지도 모릅니다.


경제 용어로 다시 읽는 오늘의 에세이


연금 이연 수령

받을 수 있는 시점을 뒤로 미루면, 수급액은 그만큼 늘어납니다. 일본은 75세까지 연기를 허용했고, 65세보다 약 84% 많은 연금을 받는 길을 열었습니다. 다만 그것은 제도가 허락해서가 아니라,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선택입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

물가와 임금이 오르더라도 연금은 그대로일 수 있습니다. 숫자상 증가는 착시일 뿐, 실질 수급액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일본은 이 장치를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한 ‘적게 받기’를 제도화했습니다. 오래 버티기 위한, 조용한 조정입니다.


고령자 고용안정법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 70세까지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 일본은 법과 제도를 바꾸어 고령 노동을 가능하게 했고, 그 변화는 결국 연금 제도의 선택지를 넓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일할 수 있어야, 늦게 받을 수 있으니까요.


노년의 노동시장 참여율

단순 통계 너머,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병원 창구, 아파트 청소, 마트 계산대.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70대의 모습은, 고령화 시대의 또 다른 ‘정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생애소득

매달 받는 금액보다 더 중요한 건 평생의 총합입니다. 연금을 늦추는 선택은, 짧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긴 시간의 안정으로 돌아옵니다. 전제는 단 하나—그 시간을 일하며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연금 사각지대

누군가는 ‘더 받기 위해’ 미루지만, 다른 누군가는 ‘아직 자격이 안 돼서’ 기다립니다. 같은 시기, 같은 제도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연기를 여유로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닌 방치입니다.


선택 가능한 사회

조건은 같아도 선택은 다릅니다. 일본은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준비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연금의 타이밍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아직, 선택지가 있음에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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