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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희 Feb 03. 2023

방 안의 빛의 공해

어렸을 때에는 방문 환하게 열어놓고 거실 불이 비치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며 잠들고는 했다. 어둠이 낯설고 무서웠기 때문에 형광등을 켜 놓고 자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큰 이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잠을 잘 때에는 항상 어둑어둑했으면 했다. 잠자는데 있어서 일말의 빛은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가 됐다. 예전에 도배하지 않고 그대로 이사를 들어온 적이 있는데, 자려고 형광등을 껐을 때 천장이 온통 야광 별로 반짝거렸다. 그 때의 아찔함이란.


가급적 잠잘 때만이라도 빛에서 해방되어도 좋을 듯한데 자려고 불만 껐다 하면  아래에서 느끼지 못했던 희미한 빛들이 강렬한 색채를 발휘하며 나를 압도한다. 그리고 압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사력을 다해  빛을 저지한다.




예전부터 쓰던 오래된 선풍기 대신 베이비핑크색의 가볍고 소음 적은 선풍기로 교체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불을 끄자마자 분홍빛 전원이 환하게 어둔 방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용설명서로 그 빛을 최대한 막았다.


선물 받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잠들려고 불을 껐을 때 블루투스 스피커는 마치 성배인 것마냥 하얀 빛을 발산했다. 그 빛을 가리자니 스피커도 함께 가리게 되어서 음악을 들으며 자는 것을 포기했다.


전기장판을 교체했더니 온도를 조절하는 조절기의 LED 화면에서 녹색 형광빛이 발산하는 것을 보고서 뒤집어 놓았다.


안전을 위하여 멀티탭의 각 구마다 전원버튼에서 새어나오는 붉은 빛이 거슬려 결국 버튼 없는 3구짜리로 싹 다 바꿨다. 버튼이 필요하다면 구석으로 최대한 처박아 빛이 내 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전원을 꺼 버렸다.


가장 최고는 가습기인데, 설마 그렇게 환하게 조명역할을 해 줄 줄은 몰랐다. 이건 어떻게 가릴 수도 없어서, 정말 가리겠다면 검정테이프로 칭칭 감싸야 하는데 그러자니 가습기의 기본 소임을 할 수 없으니 그 앞에 물건을 세워서 빛의 환함을 줄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저렴했으면 바꿨을 텐데 돈을 조금 쓴 터라 교체라는 선택지가 없었다.



예전에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전자기기는 모두 다 빛을 사용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전원이 들어왔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수단이긴 하지만, 웬만하면 빛이 없는 곳에서 잠을 자야 하는 나에게는 고역인 환경이 됐다. 정말 모든 전자기기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환하게 발산하여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전자기기를 살 때 '밤에 빛 나오나?'가 주된 고려사항이 되었다. 전자기기를 어쩔 수 없이 교체할 때마다 빛과의 사투를 하고 싶지 않은데, 요즘 전자기기에서 빛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찾기가 더 힘들다. 결국 최대한 빛의 구멍이 작은 것으로 타협하고 있다. 그러면 그 빛을 가리려는 나의 수고도 조금은 줄어드니까.


이렇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을 끄면 여전히 내 방 안에는 파랑빛과 하얀빛이 희끄무리하게 보인다. 도시의 번화가를 설명할 때나 쓰는 빛의 공해가 내 방 안에서 여실히 자행되고 있다. 잠잘 때만이라도 빛에서 해방되면 좋으련만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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