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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릉빈가 Jun 07. 2022

노래 가사 좀 해석해주세요

뜬금없이 내밀어지는 하얀 A4용지. 그 위에 일어가 한바닥 적혀 있다. 도대체 뭔 의미인가 싶어 아무 말도 안 하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는 동생이 겸연쩍게 말한다. "노래 가사 좀 해석해주세요."

나는 그 말에 즉답했다.  "인터넷 찾아봐."

그 애는 받아쳤다. "인터넷에 있으면 부탁 안 했죠."


나는 미심쩍게 그 애를 쳐다봤다. 검색만 하면 줄줄 나오는 세상에 이 노래 가사 하나 해석되지 않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언어도 아닌 일본어인데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검색해봤는데... 없다. 그 애도, 나도 못 찾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가사를 해석해 놓은 것이 없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황당함이 있나. 그런데 이렇게까지 되니 왠지 내가 해석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살짝 귀찮았다.


그래서 말했다. "번역기 돌려."

그 애는 다시 받아쳤다. "못 믿겠어요."


그 말을 끝으로 난 바로 백기를 들고 해석을 했다. 어차피 어려운 단어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줄줄 읊어나갔다. 사실 이 정도라면 번역기를 돌려도 틀린 해석이 나올 리가 없겠지만, 일본어를 잘 모르는 그 애한테 말해봐야 어차피 소용 없을 일이었다. 내 해석을 다 듣더니 그 애는 그제서야 이런 뜻이었냐며 웃었다.



그 애를 돌려보내고 나서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나 싶었는데 딱 떠오른 건 이것 밖에 없었다. '저작권'.


노래 가사 역시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요즘은 함부로 노래 가사 올리는 게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물론 저작권을 갖고 있는 작사가가 직접 고소해야 하고, 솔직히 내 생각만으로는 굳이 그 가사 하나 올렸다고, 또 그 가사 해석한 것으로 고소할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까 요즘은 노래 가사나 그 해석한 것을 자주 볼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까 나도 외국어 노래 가사를 찾다가 여러 이유로 포기한 적이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노래 가사만 모여있는 사이트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인터넷에 검색하면 노래 추천해주는 블로그가 엄청 많았는데 저작권의 개념이 인식되면서 그런 것들 거의 다 사라진 것 같다. 그런 곳에서 온갖 노래 가사를 수집하고, 그 가사를 해석한 것들을 보면서 공부도 했었고, 그 해석한 사람마다 다 뉘앙스가 달라서 가장 맘에 드는 가사 해석을 취사 선택하곤 했다. 그런 게 이제는 거의 다 사라진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서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엔 노래 가사를 이해하려면 오히려 루트가 막혔을 수도 있겠다 싶다. 오늘처럼 주변 지인의 힘으로 해결볼 수 있다면 그나마 낫지만 그러하지 못할 경우는 이제 노래 가사 해석한 것도 돈을 줘야 하는 걸까.


저작권은 보호되어야 하고,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에 이견은 없는데, 오늘 같은 경우엔 살짝 애매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거나 강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전에도 인터넷에서 이런 뉘앙스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저작권 안 걸리는 법 알려드립니다. 본인이 가사 쓰고, 본인이 작곡해서 인터넷에 올리세요. 남의 작품 가지고 뭐 해 먹을 생각하지 말고." 결국 억울하면 내가 하는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해석을 다 해주면서 그 애한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긴 했다. "일본어 공부 화이팅!"

그런 의미에서 번역기의 기능이 하루 빨리 더 나아지길 바라야만 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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