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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y수 Jun 26. 2024

굿바이 마이 굿보이

엄마도 준비 안 했으면서!!


집 나갈 일 없는 나한테 학원 나서며 아들이 뱉은 저 말에, 나는 딴청을 하며 세상에 존재한적 없는 말 취급을 해본다. 대답을 할 수 없는 논리에 대답을 하는 순간 내가 말려드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무대응이 최선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내 본능은 이미 아이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5학년 둘째. 아들이다.

위에는 중학교 1학년 첫째인 딸이 있고, 딸의 사춘기와 색깔이 완전 다른 아들의 사춘기가 다가온다.

내 기준에는 이미 늦은 학원 시간이지만, 아들 시계는 나와 다른가 보다. 10초 전이라도 도착만 하면 지각이 아닌데 왜 엄마는 동동 거리냐는 불만이다. 마치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 지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이미 죄인이라 도장 찍어 버리는 것처럼. 적고 보니 억울할 수 있겠다.




첫째는 기쁨이라는 태명으로 우리에게 와줬고 연년생을 원했던 내 계획에 딱 들어맞게 둘째는 축복받으며 태어나줬다. 사실 연년생을 원한 이유가 있었다. 풀타임에 주말까지 일하는 우리는 입주 이모님을 맞이해야 했는데, 그 동거가 더 길어지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모님과의 동거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함께 할 만하고 말고를 고민할 것이 없었다. 아니 고민하면 안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주거공간에 살아간다는 것이 예민한 나에게 너무 벅찼고, 굵고 빡세게 이 과정을 끝내 버리자 라는 마음에 둘째가 16개월 차이로 태어난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 못했다. 내 월급 그 이상이 이모님의 월급과 함께 먹고사는 생활비로 나가다 보니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마음을 괴롭히는 찰나가 잦게 왔다. 이모님 가족 행사부터 , 따님이 부부싸움 한 날은 내가 조퇴하고 이모님을 따님 집에 보내드릴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이모님께 마음을 쏟았다. 이 세상 돈을 다 긁어모아 나에게 준다해도 바꾸지 않을 아이들에게, 나의 마음이 이모님 마음이 되어 1%라도 도달되기를 간절히 욕심냈던 시절이다.

둘째는 누나와 달리 너무 순했다. 큰 아이는 카시트에 태우는 것부터 상상부터 힘든 시간이었지만 둘째는 카시트에 앉히면 조용히 창밖을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이 아이는 천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난이도가 10배는 낮아진 느낌이었다. 물론 이미 경험했으니 둘째는 쉬울 수 있다고 첫째의 억울한 항변이 귓전에 맴돌지만, 내 느낌은 현실이니 말이다. 더욱이 천사 같은 둘째가 첫째의 발달 속도를 열심히 따라잡기 시작했다. 밥 먹는 것도, 덩치도, 책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4세가 지나서는 쌍둥이 같다는 느낌을 갖고 대할 만큼 둘째라 빠른가 싶었다.



책을 좋아하고, 손에 힘이 좋아서 글씨를 잘 쓰고, 말을 논리적으로 하고, 숫자를 금방 배우고 새로운 단어를 쉽게 외웠다. 난 유난한 엄마라 5세 때 검사를 해보았고, 안타깝게도 그때부터 아이는 내 눈에 이미 훌륭한 미래 인재가 되어버렸다.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어제 학교 다녀온 후로 계속 수학문제를 풀고 있으니, 괴로울만하다. 오늘이 숙제 제출 마감기한이라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둘째가 유일하게 다니는 딱 한 개의 학원. 그 수학학원은 소문이 무시무시하고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말까지 돌지만, 아이는 그곳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수용적이라 규정을 잘 지키는 것을 마음 편해하는 기질이라, 규정을 잘 안 지키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페널티가 공평하고 안전하다 느낀 것 같다. 다른 곳을 다닐 때는 힘든 문제를 풀지 않고 별표 잔뜩 쳐온 친구들 옆에서, 힘들게 숙제해 왔는데 오답 처리되는 자신의 교재를 바라보며 열심히 숙제해 온 스스로가 어리석다 느꼈던 모양이다. 점점 별표로 가득 차는 아들의 교재를 보며 다른 학원을 알아 보던 기억이 이제는 가물 거린다.


 한 개의 긴 과정이 끝나고 빅테스트를 본 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전 과정의 숙제를 마무리해서 검사받지 않으면 다음 과정에 합격했더라도 탈락하게 되는 구조였다. 어떤 것이든 마무리를 끝까지 하고,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학원 시스템이 역시나 학부모 마음에는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제출일자가 한 달이나 여유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떤 것도 손대지 않고 마감 기한 3일 전까지 밀린 숙제를 한결같은 모습으로 미루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나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제출 못하면 지금 들어간 반에서 나와야 하는데,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한 나에게, 아이 루틴이 깨지고 새로운 학원을 알아봐야 하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또 얼마나 짜증을 낼 것이며 죄다 마음에 안 든다 할 것은 상상 백번하고도 남을 일이라, 진심으로 그 학원을 잘 다녀주기를 원했다. 솔직히 아이를 위해 이 학원이 잘 맞고의 고민이 아니라, 이기적으로 내가 힘들까 봐 하는 걱정하는 마음이라 떳떳하지는 않았지만, 이 또한 아무도 해결 못해주는 온전한 내 현실이기에 한숨 푹푹 쉴 자유 정도가 유일한 내 마음대로였다.


 왜 안 하냐, 도대체 이렇게 하루종일 놀면 어쩌려 그러냐 등의 말을 삼키고 또 삼키니 배가 터질 지경이다. 그러다 아이 입에서 바빠서 숙제를 못하겠다는 말을 듣고 폭발해 버렸다. 유일하게 다니는 학원 한 개인데, 바쁘다는 말 뒤에 숨는 것 같아 우선 화가 났고, 주변에서 나를 학원 뺑뺑이 돌리는 엄마로 볼까 신경쓰였던 콤플렉스가 건드려 졌나보다. 다행스럽게 아이와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10분 밖에 안되어 길게 말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면 뭐가 되려 그러냐는 불편한 진심이 그대로 나와버렸다. 아이는 말이 없다.


엄마는 널 믿어.

네가 뭘 하든 원하는 대로 했으면 좋겠어.


뭐가 되든 노력해야 되는데

그런데 왜 지금 노력하지 않는 거야.  


 시간이 좀 지나고 알았다.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말인지를. 믿어주지 못하면서 믿는다고 말한 것이 너무 창피한데, 더 창피한 것은 나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는 것이다. 아이는 마감 3일 전부터 숙제에 매달려 살다가, 마감 당일 데드라인 10분을 남겨두고 학원에 도착하여 제출을 하고 마무리했다. 바라보는 나에게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도 쉽지 않은 인생사 속에 버티고 있었다.




 둘째가 GOOD BOY였기 때문에 엄마인 내가 내려놓기 힘든 것이고, 앞으로도 엄청난 유혹에 흔들릴 것이다. 수용적이고 뭐든 기대 이상으로 해주던 모습이, 내 체면을 살려주기 너무 적당했던 아이였다. 아이를 통제하던 권한을 내려놓기 싫을 것이고, 아이 뜻을 꺾고 내 뜻대로 하고 싶을 것이다. 아이가 낸 결과를 내 명예로 삼고 어깨에 힘 주고 싶을 것이며 내 욕심을 채워주지 못하면 마음 속 깊이 실망 하고 그 티를 내서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려 할 것이다. 용기가 없어서 미래형으로 나열했지만, 사실 이런 경향이 이미 많은 엄마이다.


5세쯤 인가 보다.


 그런데 아이는 이제 선을 긋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이유로 그 선을 훅 넘어 들어오지 말라고 자꾸 사춘기 언어로 경고하기 시작했다. 선 그어주는 아이에게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나는 선 긋기를 마흔이 넘어하는 바람에, 흘러간 세월도 생기는 상처도 지각한 시간 그 이상의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속에 사랑하던 사람이 헤어짐을 통보한 것 같은 알싸한 아픔이 생긴다. 아이는 나의 폭발을 바라보며 엄마의 거짓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것이고, 나 또한 믿어준다는 단어 뒤에 숨겨온 내 욕심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래. 나는 아이를 믿지 않고 의심하고 또 의심한 것이다.

 

 나무를 키울 때 처음에 지지대를 세워 주다가 어느 순간 빼야 그 나무가 더 굵고 튼튼하게 자란다고 한다. 하물며 식물도 그런데, 인간은 오죽할까. 아이를 내 힘으로 받치고 있던 그 역할을 이제는 하나씩 빼야 하는데, 센 바람에 흔들리고 넘어질까 봐 걱정이 돼서 빼지를 못하는 내 모습이다. 흔들리고 버텨봐야 튼튼해지는데, 계속 받쳐주고 싶은 마음만 굴뚝이다. 지지대를 하나씩 걷어내고 뒤로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것이,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아서 젖병을 입에 물리는 낯섦 보다, 걸음마 배우려 자꾸 넘어지는 것을 참고 봐야 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둘째를 괴롭혔던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다른 엄마 통해 듣고 이불 킥하고 울었던 그 시간보다. 이 과정이 나에게는 가장 벅차고 하고 싶지 않다.




나의 굿보이.

믿어준다는 진짜 뜻이

네가 비바람에 흔들려도 시간이 지나면 튼튼해질 것을 굳게 믿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임을

이제야 조각만큼 깨달은 것 같아.


초조하고 걱정되는 마음은

엄마 인생이고 엄마의 몫이니

서툴지만 시간 지나면 잘해낼 것이라고.

엄마도 엄마를 믿어줘 볼게.


또 욕심 가득 내서 너의 모든 것을 무한대로 기다려 준다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아.

그래도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믿어볼 것이고,

내가 너를 믿는 만큼은 용기 내서 기다려 볼게.

세상을 향한 여정의 괜찮은 시작을 위한, 엄마의 선물이야.

 

 

지금까지 굿보이로

엄마에게 기쁨을 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어.
 
굿바이 마이 굿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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