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빌려줄 수 있어?
일요일 아침 8시. 얼마 전 딸내미가 산 성인용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을까 싶어 잠자는 아이한테 상냥하게 물어봤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대답은 NO. 남편이 몰래 타고 다시 가져다 놓으면 어떻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아이가 자전거를 꼼꼼하게 자물쇠로 묶어 둔걸 나는 알고 있었다. 비번 몰라서 못타.
한 주 동안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운동해서 밸런스를 맞추고 싶었다. 마침 남편이 자전거 타러 나가자 하길래 흔쾌히 나서게 된 것이다. 남편은 얼마 전 당근에서 산 늘씬하고 비싸 보이는 자전거를 조심스럽게 모셔 엘리베이터에 탄다. 사실 얼마 주고 샀는지 너무 궁금한데 안 물었다. 본인 용돈으로 산 건데 무슨 상관이냐 싶기도 하고, 어차피 진실을 말 안 할 거 같았다. 원하는 답을 못 듣느니 끝까지 안 묻기로 한 거다. 내가 쓸데없는데 쿨한 척하는 걸 나도 알지만, 생긴 대로 살기로 했다.
큰길 건너 따릉이 대여 장소로 가보니 다행스럽게 한대가 남아 있다. 얼른 2시간을 예약해서 출발해 본다. 아침이라 아직은 선선하다. 자전거 길로 들어서니 붉은색 도로만 따라가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하다. 남편은 굳이 날 앞에 보내고 뒤에 따라온다고 했다. 한강까지 가는 길을 모르는데 어쩌나 싶었지만, 따릉이 속도로 남편을 쫓아가는 것보다는 앞서가며 길을 찾는 게 낫겠다 싶었다.
10분은 좋았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에 스치는 공기도 좋고, 여름 짙은 초록으로 바뀐 풀과 나무도 좋았다. 따릉이 3단이 생각보다 속도도 잘 나서 잠시 신났지만, 다리에 벌써 무리가 온다. 미세한 언덕도 이리 잘 느껴질 줄이야. 잽싸게 2단으로 기아를 바꾸며 길 옆에 세워진 볼록거울에 비친 남편을 흘끔 본다. 길 잃는다고 집에 못 가는 애도 아닌데 뒤에서 날 잘 챙기며 오는지 확인하는 마음에, 혼자 웃는다.
지.나.갈.게.요.
횡 하니 뒤에 자전거가 앞서 나간다. 분명 앞서가는 자전거 보다 내 페달 밟는 속도가 빠른데, 나는 자꾸 뒤처진다. 다시 기아를 3단으로 바꿔서 허벅지에 힘을 빡 주며 밟아 본다. 어느 정도 속도가 나긴 해도, 그 속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릉이의 한계인가 싶어 체념하고 내 속도로 나가 본다.
자세도 바꿔본다. 다들 승모를 잔뜩 올리고 바짝 엎드려 타는 모습을 따라 해 보지만 영 자세가 안 잡힌다. 발도 앞발로 페달을 밟았다, 뒤꿈치로 밟아도 보고 자전거를 좌우로 흔들며 타보기도 한다. 느린 속도 덕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다 관찰할 수 있으니 따라 하기는 좋다. 문제는 뭐가 나한테 맞는 정답인지를 모르기에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드디어 한강으로 들어섰다. 여러 교차로를 지나 드넓은 곳에 오니 마치 자전거 애호가가 된 마냥, 상황이 마음에 썩 들었다. 평소에 한강에서 자전거 쌩쌩 타는 사람들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양재천까지는 속도 제한이 있어서 빠르게 못 가지만, 한강은 다르다. 정말 빠른 속도로 많은 자전거들이 나를 지나쳐 간다.
어느 정도 내 자세와 속도를 찾은 것 같다.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정말 아름다운 한강과 하늘과 들꽃이 참 예뻤다. 좀 전까지는 지나쳐 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무 느려 피해를 주나 싶기도 하고, 나는 왜 이렇게 속도가 안 나나 답답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오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앞서가는 그들의 모습에 깜빡 목표를 잊은 것이다.
내가 만약 자전거를 저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탔다면, 한번 밟아도 멀리 나가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면 당연히 빠르게 잘 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진실을 두고,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에게 엉뚱한 실패감의 찰나를 느낀 것이다. 시작이 다른 것인데 내가 늦은 것 같고, 속도가 다른 것인데 내가 느린 것 같다.
드디어 반포대교 지나 그토록 오고 싶었던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마지막 5분은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고, 자전거를 세워 쉬고 싶은 마음만 온몸을 지배했다. 그래도 한 시간 넘게 달려온 노력이 아까워 기아 1단을 놓고 멈추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끝까지 달려 해냈다. 어찌 보면 나는 노련히 빠르게 달리는 그들 보다 더 대단한 걸 해낸 것이라 나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해야 하는데, 아까 잠깐 속도에 시선이 빠져 칭찬을 못할 뻔했다. 나 정말 애썼다.
뒤에서 거북이걸음으로 나를 데려온 남편에게 아껴놨던 쿠폰으로 아침을 사줬다. 효율성이 중요한 나는 운동 나온 남편이 나 때문에 운동을 잘 못하는 것 같아 돌아갈 때는 먼저 가라고 했지만, 남편은 같이 하는 게 중요한데 왜 자꾸 먼저 가라고 하냐 한다. 나는 함께 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으로 좋은 결과가 중요한 사람이고, 남편은 함께 하는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라 이렇게 다른 언어를 쓴다. 생각해 보니 내가 뭘 하던지 남편은 내 뒤에서 거북이걸음으로 내 등을 바라봐 줬던 것 같다. 평소에도 내 마음대로 시작해 버리는 성격이다 보니, 일을 저지르고 남편한테 함께 수습하자고 말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 좀 미안하기도 하고 자전거 타는 것도 인생모습 같아서 웃기기도 했다.
40대 중반이 되니 주변 사람들의 살아온 성적표가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친하게 지내던 비슷해 보이던 지인이 유명한 사람이 되고, 건너 알던 사람은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하고, 같이 입사했던 동기는 최연소 임원이 되어 명함을 쓱 내민다. 이런 성적표에 내 따릉이가 너무 초라해 보이고 느리게 느껴져서 많이 좌절하고 스스로를 비난했었나 보다.
비록 지인들의 인생 속도를 내가 앞서가지는 못했지만, 내 따릉이는 시작도 달랐고 목표도 다르기에 지금은 멈추지 않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속도 조금 더 내는 것보다 나에게는 더 중요한 목표니까.
결국 나는 꿈에 다다를 것이지만, 처음부터 속도 나는 자전거를 탔다면 같은 속도로 경쟁을 했어야 하고 마음처럼 안 되었을 때 실패라 느꼈을 것이다. 죽어라 페달만 밟았으면 바람도 못 느끼고 풀도 못 보고 뒤에서 내 등을 바라봐주는 거북이걸음의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혹시 이 순간도 죽어라 페달만 밟고 있지 않는지 잠시 나와 한 뼘 떨어져 본다. 그리고 따릉이 속도로 내 인생 시계를 느끼려 노력한다.
결국은 갈 수 있는데, 뭐 그리 급하게 갈까. 들꽃도 바람도 느끼면서 가면 결국 도착했을 때
더 사연 많은 재미난 인생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