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수학 교사로서의 첫 발을 내딛으며

< 첫 부임지에서의 교사 생활(1) >

by 육아하는 수학교사

나이 서른에 드디어 사회에서의 공식적인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수학 교사... 누군가는 어려운 수학을 가르치는 것을 대단한 것처럼 볼지 모르겠다. 사실 수학이 어려운 교과목인 것은 맞지만 그저 다른 교과처럼 수학이라는 하나의 교과목일 뿐이다. 나는 그러한 하나의 교과를 잘 가르치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며 교단에 섰다. 나에게 주어진 나의 공식적인 학생이라는 대상에게 교과에 대한 많은 열정을 쏟아붓고, 나 또한 그 교과 지도에서 많은 것을 배워나갈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교단에 서려했던 것 같다. 경북 연수원에서의 임용 연수 이후 첫 발령지가 발표 나는 날이었다. 과연 어디서 나의 교직을 시작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나의 첫 직장은 경주에서도 덕동호를 꾸불꾸불 지나고 태백산맥 자락의 한 지점인 추령터널을 지나 한참을 달려 나가면 그제야 보이는 작은 항구의 한 종합 고등학교였다.(그 당시에는 상업 반과 인문 반이 공존하는 이러한 학교가 있었다.) 낯설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많은 감정선이 교차하였다. 과연 나는 어떠한 교사가 되어야 할까? 학교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교직 문화는 무엇일까? 궁금함 투성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 시절의 다양한 기억 중에서도 생뚱맞긴 하지만 딱 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학교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작은 항구와 널리 뻗어 있는 바다의 모습이다. 그 시야가 이후 나의 교직 생활에서 영영 잊히지 않는 의미 있는 풍경이었다. 가끔 답답할 땐 그 시야를 생각하며 조금씩 생각을 넓혀보려고 노력도 하였고, 때론 좋은 그 풍경을 눈과 가슴에 담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가끔 방문도 하였다. 지금은 노송이 된 몇몇 나무의 가지가 잘려나가 그 아름다운 풍경이 조금 훼손되었지만, 그 시절 나의 눈에 담긴 아름다운 풍경은 평생 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의 감정과 풍경, 그리고 생각들을 바탕으로 적어본 소소한 시 한 편으로 나의 그 당시의 마음을 대신해 본다.




나의 첫 학교


포항 오천에서 해안도로 따라 굽이굽이

그 끝에 다다른 학교


경주에서 덕동호 따라 굽이굽이

그 끝에 다다른 학교


졸업 후 4년이라는 시간을 굽이굽이

겨우 다다른 학교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교사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여있다


수업 중 창 너머로 보이는 작은 항구에는

작은 배들이 굽이굽이 바닷길을 헤매다

저마다의 이야기로 모이고 있다




그렇게 풍경이 아름다운 학교였지만, 학력 수준이 다소 뒤떨어지는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오게 되는 학교다 보니 아이들이 학업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었다.(경주는 비평준화 지역이다.) 나는 청운의 꿈을 안고 교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가정 배경과 마음에 대한 이해보다는 학업을 우선시하려는 교사로서 시작한 듯하다. 결국, 이내 이러한 나의 기대와 희망은 좌절감을 맛보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혼란을 야기시켰다. 교사란 무엇일까? 학업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교사가 교사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그 시절엔 꽤 많은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현실적 타협(?)을 하면서 아이들 수준에 맞춰 기초적인 학습 지도를 하고, 학업보다는 생활지도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 당시 많은 아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많지 않은 수의 학급 아이들이지만 개성도 달랐고, 성격도 다양하였다. 무엇보다 흡연자가 많아서 매번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과 학교 뒤편으로 흡연하는 아이들을 잡으러 부단히 다닌듯하다. 하지만 이내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나의 에너지를 적절히 조절하고, 아이들과 어떻게 함께 잘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였고, 조금씩 조금씩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교과적 지식보다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보고 아이를 판단하기보다는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생각을 보려 하였다. 때론 속아서 분하기도 하였지만 이내 속아주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지려 노력한 듯하다.

첫 해 상업 반 1학년 담임이던 나로서는 많은 아이들이 기억나지만, 그중에서도 가정형편이 좋지 않고,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잦은 자해를 시도하며, 학교에 적대적 마음을 가진 여학생이 생각난다. 나의 첫해 담임으로서 첫 만남을 가진 그 학생에게 학교는 단지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필요할 때만 잠시 들렀다가는 장소였다. 나는 참 그 학생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이후 마음을 열고 가정방문을 하며 가정환경에 대해 알아보면서 학생을 조금씩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매번 가출을 많이 한 학생이다 보니, 무작정 집이 싫어 나갔다 올 때마다 멍한 눈동자에서는 아무 의욕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학생에게 물어봤다.

“우리 OO 이는 뭘 제일 좋아해?”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기 항구 육거리 쪽에 있는 돈가스집에 파는 돈가스를 제일 좋아해요”

당연히 가출도 하고 세월의 풍파를 스스로 찾아가며 겪은 학생이라 뭔가 특별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으나, 너무나도 흔하디 흔한 여고생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란다. 당시 교사 초임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학생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학생의 마음을 조금 더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에 학교를 마치고 함께 돈가스집에서 돈가스를 사주며 대화를 나누었던 추억은 아직도 나에겐 아련한 생각을 들게 한다. 과연 그 학생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기대는 되지만, 지금에 와서는 딱히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기대는 욕심을 부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아이에게 한때 맛있는 돈가스를 잘 먹었다는 기억만 남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지금 교직 15년 차에 바라는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또 다른 한 학생은 시골 항구 마을의 순수함을 지닌 학생이었다. 순박한 마음과 수더분한 외모를 가진 학생은 학업에 늘 열중하려고 노력하였다. 학업에 관심이 없어 늘 시끄러운 주변 학우들의 분위기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다. 우리 반에서 학업뿐만 아니라 생활 태도에서도 꽤 모범적인 이 학생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생각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시간이 날 때 취미생활은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학생은 역시 바닷가 출신답게 갯바위 낚시를 좋아한다 하였다. 담임으로서 별것은 아니지만 학생과 함께 낚시를 하고 싶은 마음에 하교 후 인근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며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고, 학생의 나름 훌륭한 낚시 솜씨도 감상하며, 평소 배우고 싶던 낚시를 학생에게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은 내가 모르는 낚시에 대한 정보와 자주 잡히는 어종의 이름도 꼼꼼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낚시를 하며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과 학생 신분으로서 자신의 다양한 생각이 어떠한지 물어보며 그 대답을 들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때 돌아온 답변은 꽤 어른스러운 대답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렇게 학생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학생이라고 막연히 서툰 모습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신을 반성도 해보고, 학생들에게 배울 점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나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을 수놓은 그 자연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조금 더 그 마을의 환경에 대해 살펴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임 첫해 맡은 담임선생님으로서의 우리 반 학생 두 명의 기억이 떠올라 글로 남겨보았다. 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아이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많은 일들도 있었다.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여고생들 사이의 교우관계 문제, 가정불화, 지속적인 결석 학생, 학생의 문제로 부모님께 전화를 하였을 때 돌아오는 적반하장의 부모님의 답변... 등등... 아마 이러한 첫해의 다이내믹한 경험들이 이후 나의 교직 생활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담임의 역량 부족이었는지, 학생과 학부모의 탓이었는지, 그것을 정확히 판단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나의 첫 해 담임의 결과는 참담하였다. 우리 반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결국 자퇴라는 선택을 하면서 나의 교직 첫 해 생활이 마무리되었다.

그렇다고 나는 위축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교사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성숙하지 못해 단지 학생과 부모의 탓으로만 돌린 탓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학급 학생들에 대한 다양한 상황적 일이 많은 이 학교를 어서 벗어나 인문계 고등학교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더 키웠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학생들과 부대끼는 근무 시간 동안은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그래도 작은 학교에서 나름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업무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에게 차근히 일을 가르쳐주시고 함께 식사도 해주신 우리 부장 선생님과의 시간도 즐거웠고, 연세 지긋하신 선생님들의 격려와 응원도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특히, 학교 내 젊은 처녀, 총각 선생님들의 모임인 처총회라는 모임을 가지면서 작은 설렘도 가져보고, 서로 얘기도 나누고, 퇴근 이후 즐거운 시간도 보냈던 것이 아직도 나에겐 첫 학교에서의 좋은 기억을 안고 가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2년 차의 교직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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